EU 중재로 세르비아-코소보 '어색한 대면'…갈등 해법 찾을까
'번호판 교체' 유예기간 종료일…해묵은 갈등에 발칸 긴장 고조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이른바 '차량 번호판 논란'에 긴장이 고조된 발칸반도의 앙숙 세르비아와 코소보가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유럽연합(EU) 중재로 회동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21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외교부 격인 대외관계청(EEAS)에서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 알빈 쿠르티 코소보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 고위급 회동을 주재했다.
회동에는 미로슬라우 라이차크 EU 세르비아·코소보 회담 특별 대표도 배석했다.
이날 회동은 코소보가 세르비아에서 발급된 자국 내 차량 번호판을 코소보 발급 번호판으로 교체하도록 하는 강제 조치를 시행한 이후 양국 간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뤄졌다.
특히 이날은 코소보가 새로운 번호판 정책의 유예기간 종료 시한으로 못을 박은 날이기도 하다.
앞서 지난여름에도 양측은 동일한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EU와 미국 중재로 코소보가 번호판 교체 시행을 잠정 연기하면서 충돌은 막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코소보 정부는 유예기간이 끝난 뒤부터 번호판을 바꾸지 않은 차량 운전자에 대해 150유로(약 21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4월 21일까지는 모든 차량량 번호판을 코소보 기관 발급 번호판으로 교체한다는 구상이다.
그러자 코소보에 사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번호판 변경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코소보 정부의 관할하에 있지만, 세르비아인들이 실질적인 자치권을 행사하는 코소보 북부 4개 지역 시장을 비롯해 법관, 경찰관 등 세르비아계 공직자들이 줄지어 사퇴하며 공공 서비스가 사실상 올스톱되기도 했다.
세르비아 정부는 코소보에 사는 세르비아계의 집단행동을 지지하는가 하면 일부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번호판을 교체한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물리적 충돌 우려도 고조되는 상황이다.
보렐 고위대표도 앞서 "두 국가가 (차량 번호판 교체 유예기간이 끝나는) 21일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양측 간 갈등이 최근 10년간 가장 위험한 수위에 도달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차량 번호판을 둘러싼 갈등 격화는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해묵은 역사적 갈등과도 연계돼 있다.
코소보는 1990년대 말 유고 연방이 해체될 때 세르비아에서 분리 독립하려다 수천 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내전을 겪었다.
이후 2008년 유엔과 미국·서유럽 등의 승인 아래 독립을 선포했으나 세르비아는 우방인 러시아·중국 등의 동의 아래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EU 등 서방 입장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뜩이나 안보 불안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발칸반도에서의 추가적인 긴장 고조를 막아야 하는 셈이다.
당초 회동 성사 여부조차 불투명했지만, 일단 양측이 마주 앉은 만큼 대화의 물꼬는 텄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동에 앞서 보렐 대표는 부치치 대통령과 쿠르티 총리와 각각 양자 회동을 하기도 했다. 양측의 입장을 사전에 듣고, 중재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다만 양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으리란 관측이 제기된다.
EEAS가 공개한 회동 영상을 보렐 고위대표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부치치 대통령과 쿠르티 총리는 시작 전부터 서로 시선을 피하는 등 어색한 기류가 역력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이날 회동이 끝난 뒤 별도 성명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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