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 아닌 정의"…개도국, '손실과 피해' 보상에 환호
선진국 저항 뚫고 승전가…"기후 취약층에 새 역사"
"큰 상처에 붙인 작은 반창고일 뿐" 환경단체 비판도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기후변화 책임이 덜하지만 더 큰 피해를 보는 국가에 대한 보상기금 조성이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타결되자 저개발국에서 환영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뉴욕타임스(NYT),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셰리 레흐만 파키스탄 기후변화부 장관은 20일(현지시간) 합의가 이뤄진 뒤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로 생사 갈림길에 선 전 세계 취약 계층에 희망을 줬다"고 평가했다.
레흐만 장관은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생겼다"면서 "이 보상금은 자선이 아니다. 기후 정의를 실현하는 데 대한 착수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파키스탄은 올해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겪은 국가 중 하나다.
9월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로 1천7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조 원 규모의 물적 피해를 봤다. 수재민은 전체 인구의 약 15%인 3천300만 명에 달한다.
카리브해 섬나라 앤티가 바부다의 몰윈 조셉 환경장관은 "이번 총회에서 손실과 피해 보상금이 합의된 건 전 세계의 승리"라고 밝혔다.
앤티가 바부다는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대표적 섬나라다.
조셉 장관은 "이번 합의를 통해 그간 국제 사회에서 등한시됐다고 느꼈던 국가는 자국의 의견이 존중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면서 "당사국 총회가 세계적 신뢰를 회복했다"고 평가했다.
손실과 피해는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적, 비경제적 손실을 뜻하는 말이다.
개도국은 기반 시설이 부실한 탓에 가뭄, 홍수 등 손실과 피해의 직격탄을 맞았고 이에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이 큰 선진국에 보상을 요구해왔다.
해당 사안은 이집트에서 개최한 이번 총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식 의제로 채택됐으며, 선진국과 개도국은 세부 사항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 끝에 이날 관련 기금 조성 등 내용을 담은 총회 합의문 성격의 '샤름 엘 셰이크 실행 계획'을 채택했다.
태평양 섬나라 마셜제도의 캐시 제트닐 키지너 기후 특사도 "이미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작은 섬, 해안선, 문화는 보호할 가치가 있다"면서 "많은 이들이 보상금 합의 성사 가능성에 대해 이번 주 내내 회의적이었는데, 그 예측이 틀리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COP27 의장을 맡은 사메 수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은 "우리는 (기후변화) 상황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면서 "24시간 밤낮으로 일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단결한 끝에 합의문을 만들었다. 우리는 고뇌와 절망에 귀를 기울였다"고 자축했다.
환경 단체를 비롯한 국제기구도 18일로 예정됐던 폐막일을 36시간가량 넘기는 등 오랜 진통 끝 마련된 이번 합의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프리카의 기후 관련 싱크탱크 '파워시프트아프리카'(Power Shift Africa)의 무함마드 아도우는 "처음에는 손실과 피해 보상이 논의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면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먼 스티엘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은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은 매우 고됐으나 손실과 피해 보상금으로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COP27 참여국의 결정을 환영한다면서 "이번 합의문은 깨져버린 합의를 복구하기 위해 그간 절실히 필요했던 정치적 신호"라고 설명했다.
이미 극한으로 치달은 개도국의 피해를 보상하려면 이번 합의문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린피스 독일 지부의 마르틴 카이저는 "해당 합의는 거대하게 벌어진 상처 위에 붙인 조그마한 반창고와도 같다"고 평가했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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