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헤르손서 철수…신중론 젤렌스키 "조심스럽게 움직일 것"(종합2보)
드니프로강 건너편에 방어선 구축 명령…우크라 "철수라기엔 일러"
전략적 요충지 헤르손 전역 후퇴시 러에 큰 타격…바이든 "러 어려움 방증"
(제네바·서울=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김지연 기자 = 러시아군이 점령지였던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에서 9일(현지시간) 철수하고 방어선을 새로 구축하기로 했다.
전략적 요충지인 헤르손 일대에서의 철군이 러시아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아직 러시아가 철수했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면서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이날 헤르손에서 철수하고 드니프로 강 동쪽 건너편에 방어선을 구축할 것을 군에 명령했다고 AFP·로이터·DPA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러시아군 우크라이나 지역 합동군 총사령관인 세르게이 수로비킨은 TV로 방송된 논평을 통해 "더는 헤르손시에 보급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쇼이구 장관은 이에 "당신의 결론에 동의한다, 군대를 철수해 이동하라"고 명령했다.
2014년 러시아가 무력으로 병합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맞붙은 요충지 헤르손주는 자포리자 등 우크라이나 영토 다른 3곳과 함께 주민 투표와 의회 승인을 거쳐 지난달 5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종 서명으로 러시아 합병 절차를 완료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를 규탄하며 러시아의 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달 이곳에서 러시아 점령지 약 500㎢를 수복한 데 이어 대규모 공세를 펴며 탈환을 시도해왔다. 이 지역 가운데 헤르손시는 이미 친러시아 행정부가 지난달 19일 주민 대피령을 내린 상태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철군 발표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적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지 않고 선의의 제스처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모두 쟁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므로 우리는 감정 없이, 불필요한 위험 없이, 우리의 땅을 모두 해방시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주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도 로이터 통신에 "일부 러시아군이 아직 헤르손주에 주둔하고 있어 철수했다고 이야기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트위터에서도 "행동은 말보다 목소리가 크다"라며 "러시아가 싸우지 않고 헤르손을 떠난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하르키우와 리만 등 점령지를 잇달아 우크라이나군에 내주며 고전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헤르손시에서 철군한 것은 흑해, 크림반도와 연결되는 남부의 전략적 요충지인 헤르손 일대마저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올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점령했던 헤르손 전역을 내놓게 된다면 러시아군이 겪게 될 전략적·심리적 타격이 심각할 것이라는 관측도 뒤따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러시아의 헤르손 철수와 관련해 "러시아, 러시아군이 어떤 진짜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전날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공화당이 집권 민주당에 근소한 차이로 승리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데, 공화당 내 일부 강경파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인도주의적 지원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정책 영역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맞서는 초당적 접근을 계속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협상론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도록 요청했다는 보도가 미 언론에서 나온 바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9월부터 남부와 동부 전선에서 반격에 성공을 거두자 회담을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우크라이나는 평화 회담의 조건으로 러시아의 우크라 영토 전체 반환을 요구하고 있어 협상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올레그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교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 이날 페이스북에 "러시아 관리들은 러시아군이 전장에서 패배할 때마다 회담을 제의하기 시작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협상 제의가 러시아가 전열을 가다듬고 병력을 보강해 새로 공격할 시간을 벌려는 연막 작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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