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하향 후보군 쌓여간다…내년부터 본격 '줄하향' 예고

입력 2022-11-11 06:15
수정 2022-11-11 08:04
신용등급 하향 후보군 쌓여간다…내년부터 본격 '줄하향' 예고

올해 등급 상하향배율 0.91배…'정점' 찍고 내년 무더기 강등 가능성

등급 하락→자금조달 비용증가→경영악화→추가 하락 '악순환'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기자 = 내년 기업 신용등급에 경기침체와 유동성 위기 상황이 본격 반영되며 '무더기 강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신용평가사의 등급 하향 후보군 명단에는 상당수 기업이 쌓여가는 형국이다. 신용등급 하향 조정된 기업 수 대비 상향조정된 기업 수의 비율도 올해를 정점으로 내년부터는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

11일 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나이스신용평가 3사의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신용등급 하향 검토 리스트를 분석한 결과 현재 각사는 10∼20여곳 기업들을 등급 강등 후보군에 올려놓은 상태다.

신용평가사들은 보통 6개월 이내의 단기간에 등급변경 가능성이 있는 후보군(등급감시대상)과 1∼2년 장기간에 걸쳐 변경을 검토하는 후보군(등급전망)으로 구분한다.

롯데 계열사가 최근 등급 하향 후보군에 오른 대표적 사례다.

지난달 롯데케미칼이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결정하자 나이스신용평가는 인수 대금과 추가적인 신규 투자자금 투입 등에 의한 연쇄적인 재무부담 확대를 우려해 롯데지주와 롯데렌탈, 롯데캐피탈 등 계열사 상당수를 등급 하향검토 등급감시대상에 추가했다.



올해 초 광주 화정아이파크 공사현장 붕괴사고 이후 수주 경쟁력 저하 등에 시달린 HDC현대산업개발과 지주사 HDC도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의 장단기 등급 하향검토 대상에 올라 있다.

내년 '줄강등'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신용등급이 후행지표이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들은 보통 기업의 회사채 신용등급에 대해 6월 말까지, CP 신용등급은 12월 말까지 정기평가를 마친다.

따라서 매년 상반기 진행되는 회사채 신용등급은 직전 연도 재무제표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물론 특정 기업에 대형 이벤트가 발생하면 정기평가 외에 수시평가가 진행되나 상당수 신용등급은 정기평가 때 조정된다.

이로 미뤄볼 때 올해 불거진 경기부진이나 회사채 시장 유동성 위기 등 현재 기업들이 겪는 복합적인 리스크는 내년부터 신용등급에 본격 반영된다.



올해도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기업 수가 상향 조정된 기업 수보다 많았지만, 내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SK증권에 따르면 올해 신용등급 하향 조정 기업 수 대비 상향 조정 기업 수의 비율을 뜻하는 등급 상하향배율은 0.91배로 집계됐다.

2018년 말 기준 0.96배였던 이 비율은 2019년에 0.53배, 2020년에 0.40배, 지난해 0.50배로 최근 3년간 0.4∼0.5배 수준에 머물렀다.

그나마 올해 기업 신용등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 실적 개선이 뚜렷했던 작년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부여된 덕분에 상하향배율이 최근 4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그나마도 1배에 미달했다.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내년 경기둔화는 변수가 아닌 상수"라며 "기업의 수익성과 안정성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신용등급 하방 압력도 그만큼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의 신용등급은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때 들어가는 비용과 직결된다.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투자자들에게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투자업계는 신용등급 하락으로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면 경영상황이 악화해 등급이 추가로 강등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익명의 한 증권사 회사채 담당 관계자는 "특히 A등급 기업들이 문제"라면서 "이들이 BBB등급으로 떨어질 경우 단순히 조달 비용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장 접근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yk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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