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거래 침체에 실거래가 급락…공시가>실거래가 역전 속출
급급매만 팔려 거래가 끌어내려…공시가격보다 싸거나 근접한 거래 급증
정부 공시가 현실화율 내년 동결키로…공시가 하락지역 다시 늘 듯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올해 역대급 거래 침체로 집값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실거래 가격이 올해 최고 공시가격에 육박하거나 그 이하로 떨어진 단지들이 속출하고 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높은 서울과 지난해 집값이 급등해 올해 공시가격이 높게 책정됐다가 최근 집값이 급락하고 있는 수도권과 지방을 중심으로 실거래가와 공시가격 역전 지역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내년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사실상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한 가운데, 실거래 가격이 급락하면서 내년도 공시가격 하향 조정 단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공시가격 ≥ 실거래가, 비슷하거나 역전하는 단지 잇따라
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84㎡는 지난달 초와 8월 말 각각 19억5천만원에 거래됐다.
올해 1월1일자로 산정된 이 아파트 올해 공시가격이 18억원대에서 최고 19억8천500만원에 책정됐는데 최고 공시가보다 3천500만원 낮은 금액에 팔린 것이다.
잠실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현재 20억원짜리 매물이 줄줄이 나와 있지만 금리 부담 때문에 거래가 안된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매수인들의 갭투자가 막혀 있다보니 반드시 집을 팔아야 하는 집주인은 20억원 밑으로 낮춰서라도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잠실 레이크팰리스 전용 84㎡도 지난달 말 17억9천500만원에 거래돼 실거래 가격이 올해 공시가격(최고 18억2천6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실거래가격이 공시가격 수준에 근접한 단지들도 늘고 있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은 지난달 중순에 계약된 거래 금액이 11억8천500만원까지 떨어져 이 아파트 올해 공시가격 11억5천만원에 근접했다.
강동구 상일동 고덕아르테온은 전용 84㎡의 올해 공시가격이 12억9천100만원인데 지난달 중순 계약된 실거래 가격이 13억2천500만원까지 내려온 상태다.
노원구 상계 보람 전용 44㎡는 가장 최근에 신고된 9월말 거래가가 4억원으로 공시가(3억5천900만원)의 약 90%에 달했다.
지난해 아파트값이 급등해 공시가격이 많이 올랐던 인천 등 일부 수도권에서도 올해 가격이 급락하면서 실거래가와 공시가격 격차가 줄거나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 송도 더샵센트럴시티 전용 60㎡는 지난달 중순 5억500만원에 거래가 찍혔다. 올해 공시가격 최고가 5억3천600만원보다 3천만원 이상 싼 금액이다. 지난달 초 계약된 금액도 5억4천300만원으로 공시가격과 비슷하다.
이 아파트 전용 84㎡도 지난달 초순 6억9천만원이던 실거래가 하순에는 6억4천만원으로 떨어졌다. 이 아파트 올해 공시가격은 7억1천200만원으로 실거래가와 공시가격 역전현상이 두드러졌다.
또 인천 송도SK뷰 전용 84㎡는 지난달 초순 7억500만원에 팔린 뒤 하순에는 6억7천만원에 계약돼 올해 공시가격(6억6천80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천 송도동 e편한세상 송도 전용 70㎡는 가장 최근 거래가가 지난달 초에 팔린 5억1천만원으로, 올해 공시가격 최고액(5억1천900만원)을 밑돌았다.
올해 내내 아파트값이 떨어지고 있는 대구시에서도 공시가격과 실거래가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대구 범어동 e편한세상 범어 전용 84㎡는 지난달 중순 실거래가가 5억9천700만원으로 하락해 올해 공시가격(최고 6억4천800만원)보다 5천만원가량 낮았다.
◇ 역전지역 더 늘어날 듯…전문가 "현실화율 90% 낮춰야"
전문가들은 올해 집값 하락이 계속되고 있어 현실적으로 공시가격과 실거래가 역전지역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역대급 거래 침체로 실거래가가 작년보다 급락한 가운데 정부의 금리 인상 기조가 당장 최소한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추가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 1∼8월 누적 실거래가 변동률이 이미 전국 -5.16%, 서울 -6.63%, 수도권 -7.65%를 기록해 동기간 역대 최대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에 따라 내년도 공시가격도 하락 지역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은 지난달부터 공시가격 조사·산정 업무에 착수한 가운데 내년 초까지 집값 변동분을 3월경 발표할 내년 1월1일자 공시가격에 반영한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공시가격을 산정할 때 적정 시세는 실거래가 외에도 해당 단지의 시세, 매물 가격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반드시 현재 실거래가가 내년도 공시가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다만 최근 실거래가 하락지역이 많아 단지별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인 공시가격은 올해보다 떨어지는 곳들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는 시세의 90%까지 올리기로 한 로드맵상 현실화율이 과도하다는 의견이 많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위기 때처럼 집값이 급락하지 않더라도 시세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시세와 공시가격 역전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공시가격 로드맵 손질을 위해 지난 4일 열린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에서 기존 현실화 계획을 일단 1년 유예할 것을 제안했다.
최근 거래 급감으로 시세가 불명확하고 내년도 시장 상황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민 조세부담 수준을 고려한 수정 현실화 계획을 확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국토부도 이를 받아들일 예정이어서 내년도 공시가격은 현실화율이 올해 수준(공동주택 평균 71.5%)으로 동결된 상태에서 집값 변동에 따라 공시가격이 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공시가격 로드맵 손질을 주문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박사는 "가파른 공시가격 현실화율 제고는 집값 상승보다 공시가격이 더 많이 오르는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 국민들의 과도한 보유세 급증으로 이어진다"며 "주택시장의 변동성과 적은 거래량 수준 등을 고려할 때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80%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반대 의견도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공시가격은 중요한 기초 통계로 시세 수준에서 책정되는 게 맞다"라며 "현실화율을 낮추려는 정부 계획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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