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빈의 플랫폼S] 참사 12년만의 축제, 베를린을 유네스코 유산 만들까
압사 참사로 21명 사망·650여명 부상 '러브 퍼레이드' 부활
경찰 600여명 투입해 차량 통제…행렬 뒤 경찰차·청소차 대열
베를린 클럽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추진 운동
[※ 편집자 주 :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S입니다. 지속가능과 공존을 위한 테크의 역할과 녹색 정치, 기후변화 대응, 사회적 갈등 조정 문제 등에 대한 국내외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재앙적인 사고로 사회적 트라우마를 낳은 축제.
슬픈 기억을 딛고 사고 예방·관리 속에서 지속가능한 문화, 도시 발전의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2010년 압사 참사로 21명이 숨지고 650여 명이 다친 독일의 '러브 퍼레이드'(Love parade)는 이런 가능성을 펼쳐보였다.
지난 7월 9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우연히 러브 퍼레이드 행렬을 마주했다. 1년 반 전에 특파원으로 있었던 베를린을 잠시 방문한 시점이었다.
특파원 시절에는 접할 수 없던 행렬이었다. 2010년 뒤스부르크에서 열린 러브 퍼레이드에서 압사 참사가 일어난 뒤 행사는 명맥이 끊겼다.
이번 행사 명칭은 정확히 러브 퍼레이드가 아니었다. 러브 퍼레이드를 계승하되, 공식 명칭으로는 '레이브 더 플래닛'(Rave the Planet)을 내세웠다. 독일 사회에 참사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있는 탓이다.
행사는 서베를린의 대표적인 번화가 쿠담 거리에서 시작됐다. 18대의 트럭이 천천히 줄지어 움직였다. 개조된 트럭에는 각각 수십 명의 클러버들이 올라타 테크노음악에 몸을 맡겼다.
퍼레이드는 무질서해 보였지만 평화로웠다. 거리에 차량 운행이 통제돼 있었다. 쿠담 거리는 온전히 퍼레이드를 위한 공간이었다.
행렬의 끝에는 경찰차들이 줄지어 따라갔다. 서너 명씩 짝을 지은 경찰들은 거리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현지 매체 타츠에 따르면 투입된 경찰만 600여 명.
경찰차 뒤에는 청소차들이 따라왔다. 환경미화원들은 흥분한 시민들이 길바닥에 깨뜨린 맥주병 잔해 등을 곧바로 치웠다. 베를린시 청소당국 직원 110여 명과 차량 50대가 동원됐다.
청소차들이 뿌린 물로 젖은 도로에는 곧바로 일반 차량 통행이 이뤄졌다. 퍼레이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질서정연한 뒤처리였다.
러브 퍼레이드가 시작한 해는 1989년. 같은 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기 4개월 전에 장벽과 접한 서베를린 지역에서 열렸다. 음악을 통한 평화 증진을 내세운 자발적인 시위 형태로 출발했다.
해가 갈수록 참가자 규모가 늘어나 15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지나친 향락과 쓰레기 양산, 안전 문제 등으로 곱지 않은 시선도 받았다.
특히 뒤스부르크 참사 이후 사회적으로 돌이키고 싶어하지 않은 기억이 됐다.
2019년이 되어서야 러브 퍼레이드 재개가 결정됐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산됐다가 올해 12년 만에 열렸다.
퍼레이드에서는 베를린 클럽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해 달라는 구호가 흘러나왔다.
러브 퍼레이드 창립자인 테크노 뮤지션 닥터 모테는 퍼레이드의 시작 전 짧은 연설을 통해 이를 주장하기도 했다.
베를린 클럽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베를린은 유럽에서 컨템포러리 예술과 클럽 문화의 메카로 자리매김해왔다. 분단기에 동서로 나뉜 경계의 도시라는 특수한 조건이 자양분이었다. 통일 후 경계 지역의 빈 건물에 전 세계에서 온 젊은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차렸다. 빈 창고는 클럽으로 바뀌었다.
이런 문화적 토양과 자유로운 기운은 젊은 예술가와 클러버들뿐만 아니라, IT 등 전문직 청년들까지 몰리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숱한 화제를 뿌리며 열린 레이브 더 플래닛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경찰 추산 20만 명 정도의 시민이 참여했다. 경찰 측도 특별한 사고 없이 행사가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축제가 끝난 뒤 현지 언론들의 평가도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독일 밖에서도 많은 매체가 성공적인 개최 소식을 알렸다. 베를린의 클럽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같이 타전됐다. 베를린이라는 도시 브랜드 가치가 올라갔을 것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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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펜스, DJ폴리스...이태원에도 있었다면(f. 전 베를린 특파원)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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