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는 2분만·사우나는 여럿이…겨울 앞 유럽, 에너지 자린고비
러 가스 끊긴 유럽, 에너지 절감·추가 공급 확보에 사활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중부 유럽 슬로바키아에서는 샤워를 2분 내로 끝내라는 지침이, 북유럽 핀란드에서는 전국민이 즐겨하는 사우나를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하라는 권고가 나왔다. 스페인 앞 바다에는 최근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은 운반선들이 하역을 기다리며 장사진을 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가스가 끊기며 에너지 위기에 처한 유럽이 겨울 문턱인 11월에 접어들자 이처럼 에너지 사용은 줄이고, 공급은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970년대 석유 파동 시절을 방불케 하는 대책들이 무려 반 세기 지난 현 시점에 유럽에 소환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하는 서방 국가들을 상대로 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등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카드를 꺼내든 탓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만 하더라도 유럽 전체 가스 공급의 45%를 차지하던 러시아산 가스가 전쟁 이후 10% 이하로 뚝 떨어지자 유럽은 다각적인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전략을 세웠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겨울을 별탈 없이 나기 위해 나라별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다.
우선 유럽 전역에서는 에너지 절약이 화두로 떠올랐다. 독일과 프랑스, 덴마크 등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가정과 사업체, 공공건물에서 실내온도를 19도 이상으로 올리지 말 것을 독려하고 있다. 또한 전력소비량이 많은 시간대를 피해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안쓰는 가전은 콘센트에서 빼놓을 것도 권고했다.
덴마크의 경우 세탁물은 건조기 대신 빨랫대에 널어 말릴 것을 권고했고, 슬로바키아는 샤워는 2분 내로, 양치 후 헹구는 물은 1컵으로 제한하라는 지침을 내리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정부가 관여하고 있다.
인구 550만명에 사우나는 300만개를 갖춘 '사우나 천국' 핀란드에서는 사우나를 할 때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하고, 더 짧게, 더 가끔, 온도는 더 낮춰 에너지를 아낄 것을 정부가 호소하고 있다.
에너지 소비의 주요 주체이기도 한 유럽 각국 정부도 권고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공공건물의 난방을 줄이고, 가로등을 끄고, 공영 수영장 문을 닫는 등의 방식으로 에너지 절감에 동참하고 있다.
이 같은 에너지 절감 노력과 함께 각국이 비상 에너지 비축에 나서 가스 저장고가 꽉 찬 덕분에 당초 걱정과는 달리 유럽이 큰 혼란없이 내년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벨기에 싱크탱크인 브뤼겔의 시모네 탈리아피에트라 연구원은 "유럽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던 러시아 (에너지)와의 완전한 분리를 그럭저럭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현재 전체 사용량의 7% 선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는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완전히 끊기면 일부 나라들은 여전히 곤란에 처할 수 있고, 최근 프랑스와 체코 등에서 물가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펼쳐진 것에서 보여지듯 에너지 위기로 인한 사회 불안이 잠복해 있는 만큼 각국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겨울을 앞두고 에너지 저장고 대부분을 채운데다 예년에 비해 초겨울 날씨가 훨씬 따뜻해 비축된 가스가 예상보다 더 오래 갈 것으로 전망됨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여전히 추가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스페인은 저장고 용량이 다 차 더 이상 하역을 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LNG를 실은 운반선을 자국 앞바다에 계속 대기시키고 있고, 독일은 문을 닫으려던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미국과 중동 등에서 수입한 LNG를 원활히 들여오기 위한 LNG 터미널도 새로 구축 중이다.
영국과 덴마크, 네덜란드 등은 환경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스전을 찾기 위한 연안 시추에 나섰고, 그리스 등은 석탄 발전량을 늘리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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