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수낵, 느슨한 의료 시스템 손본다…"병원 노쇼에 벌금 부과"
"진료 예약부도, 매년 1천500만 건…의료진 시간·비용 피해 커"
英의사노조 "무상의료체계 가치 훼손, 취약 계층이 피해" 반대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리시 수낵 영국 신임 총리가 병원 진료를 예약하고 당일 방문하지 않는 '노쇼'(No-show·예약 부도) 환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는 수낵 총리가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의료·건강보험 제도 개혁안 중 하나이지만, 대국민 의료 서비스가 위축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이날 총리실은 진료를 예약해놓고서는 사전 통지 없이 진료 당일 병원에 오지 않는 이들에게 벌금 10파운드(약 1만6천 원)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첫 노쇼까지는 괜찮지만, 두 번째부터는 벌금을 내야 한다.
총리실 대변인은 "수낵 총리는 영국 납세자가 무상의료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로부터 최고의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전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수낵 총리는 25일 다우닝가 집무실 앞에서 취임 후 첫 연설을 하며 "우리는 수십억 파운드를 들여 코로나19와 싸워왔다"며 "NHS를 보다 강력하게 만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수낵 총리는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리즈 트러스 전 총리와 맞붙었을 때부터 이 공약을 자신의 대표적 보건 정책으로 내세웠다.
노쇼 환자 때문에 일반의(GP)가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큰 피해를 보는 만큼, 페널티 부과로 예약부도율을 낮춰 의료 서비스를 더 원활하게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실제 영국에서는 일반의 진료에서 연평균 1천500만여 건의 노쇼가 발생한다. 예약 환자 20명 중 1명꼴로 사전 통보 없이 진료를 취소하는 셈이다.
특히 2019∼2020년에는 외래 환자 진료 총 1억2천500만 건 중 800만 건이 노쇼로 누락됐다.
안 그래도 격무에 시달리며 시간에 쫓기는 일반의가 매년 120만 시간을 낭비하게 되며, 연간 2억1천600만 파운드(약 3천555억 원)에 이르는 피해액은 풀타임 근무하는 정규직 일반의 2천325명의 연봉과 맞먹는다는 것이 수낵 총리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을 두고 영국 의료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필립 밴필드 영국의학협회(BMA) 의사노조 회장은 "BMA는 약속을 어긴 환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것에 단호하게 반대해왔다"며 "이는 필요한 모든 이에게 무료 진료를 제공한다는 NHS의 기본 원칙을 훼손한다"고 밝혔다.
밴필드 회장은 노쇼 환자를 처벌하기보다는 이들이 진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를 먼저 고려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를 재정적으로 처벌하면 지역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계층이 영향을 받는다"며 노쇼 벌금이 "이들 환자의 재예약을 막고 건강 불평등을 악화해 결국 NHS에 들어가는 비용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hanju@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