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팅하우스 소송에 원전수출 빨간불?…승소 가능성 작을 듯
기술사용 실시권 이미 명문화…로열티 지급할 의무 없어
지분 보유한 사모펀드측 매각 전략이란 분석에 무게 실려
한수원·한전·산업부 대응 전략 안이하다는 지적도 제기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권희원 기자 =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을 상대로 지식재산권(지재권) 소송을 제기하자, 한국형 원전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웨스팅하우스를 보유한 사모펀드가 매각 과정에서 회사 가치를 부풀리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1일(현지시간) 한수원과 한전을 상대로 미국 수출입통제법에 따라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의 수출을 제한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미국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에 자사 기술이 적용됐다며 이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려면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에너지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가 2000년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을 인수했는데, 한수원의 APR1400이 CE의 원자로인 '시스템 80' 디자인을 토대로 개발됐다는 논리다.
원전 기술의 수출 규제를 명시한 미국연방규정집(CFR)에 따라 APR1400에 포함된 기술이 미 에너지부의 허가 대상이라는 주장도 함께 내세우고 있다.
26일 원전업계와 학계 등에 따르면 2007년 6월부로 만료된 해당 기술의 사용 협정문에는 로열티 지급 없이 국내외에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실시권'이 명문화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시 말해, 해당 기술에 대해 웨스팅하우스가 소유권과 특허권을 주장할 수 없으며 우리 측에서 로열티를 지급할 의무도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국이자 미국과 2020년 원자력 핵 협정을 맺은 폴란드에 한국의 원전 수출을 제한할 미국 내 법적 근거도 없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 4기를 수출할 때도 지재권을 문제 삼은 바 있다.
당시 기술이전은 이미 끝난 상황이었지만, 한수원이 핵심 기술 자립을 이루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웨스팅하우스에 기술자문료 등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측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한전과 한수원은 100% 기술 자립에 성공해 당시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고, 미국에 로열티를 지급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원전업계는 이런 이유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웨스팅하우스의 지재권 승소 가능성이 작다고 보는 분위기다.
특히 웨스팅하우스를 보유한 캐나다 사모펀드 브룩필드는 최근 웨스팅하우스 지분 49%를 캐나다 우라늄 업체 카메코에 매각했다.
웨스팅하우스가 파산한 지 4년 만에 일부 매각이 진행된 것으로, 브룩필드는 여전히 51%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브룩필드 입장에서는 매각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프로젝트 수주 등으로 웨스팅하우스의 몸값을 올려야 하는 입장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웨스팅하우스의 소송에도 한국의 원전 수출은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소송을 통해 웨스팅하우스가 한국보다 우월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한국은 자신들과 협력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잠재적 매수자와 원전 도입 희망국에 심어줘 수주전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거나 주가를 올려 재매각할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물론 폴란드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 6기의 수주전은 폴란드와 미국의 안보 동맹 차원에서 웨스팅하우스 쪽에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는 최근 이 사업에서 웨스팅하우스를 선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제는 웨스팅하우스가 최근 원전을 지어본 경험이 없어 단독 수주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은 효율적이고 규격화된 원전 건설 경험이 풍부하고 가격 경쟁력도 훨씬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는 별도로 한수원은 조만간 서울에서 폴란드전력공사(PGE), 폴란드 민간 에너지기업 제팍(ZEPAK)과 폴란드 패트누브 화력발전소 부지에 원전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할 예정이다.
제반 정황을 살펴보면 웨스팅하우스의 소송전 제기로 한국형 원전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단정짓기는 이른 상황으로 보인다.
다만,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 한수원 모두 이번 사태를 폴란드 현지 매체의 기사를 통해 처음 접하는 등 원전 수출 대응 전략이 안이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윤석열 정부가 폴란드 원전 사업을 포함해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만큼 더욱 기민하고 촘촘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원전 수출에서 지재권 문제는 계속 나올 수 있는 건데, 문제를 방치한 채로 이번 사업에 임한 것"이라며 "웨스팅하우스가 지난 6월 방한해 한전·한수원을 만났을 때도 분명 얘기가 나왔을 것이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했어야 했는데 모른 체하고 일을 진행하다가 대가를 치른 셈"이라고 지적했다.
redflag@yna.co.kr, hee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