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영국의 수낵, 미국의 오바마, 중국의 시진핑

입력 2022-10-25 14:50
[논&설] 영국의 수낵, 미국의 오바마, 중국의 시진핑



(서울=연합뉴스) 황재훈 논설위원 = '기회의 땅'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에서 유색인종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는 232년이 걸렸다. 2008년 11월 제44대 대통령으로 버락 오바마가 선출되기 전까지 사회적 소수인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일을 상상하기는 미국에서도 쉽지 않았다. 아프리카 땅에서 유학 온 케냐 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버락 후세인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의 변화를 보여준 상징이 됐다.

영국의 새 총리에 40대 기수인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이 결정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정치사상 비(非)백인으로는 처음 총리직에 오르게 됐고, 42세로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 기록까지 세우게 됐으니 당연한 관심이다. 영국 내각 역사상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백인이 총리 자리를 도맡아 왔는데, 과거 대영제국 식민지 혈통의 인도계에 총리직이 돌아가게 됐으니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영국은 물론 "독립 75년 만에 역사적인 날"이라고 인도가 들썩였을 정도라고 한다. 영국은 이제 총리와 런던 시장 모두 유색인종이 맡게 됐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도 파키스탄계 무슬림이다.

수낵은 인도계라서 소외됐거나 힘든 역경을 딛고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금수저다. 이민자인 의사 아버지와 이민 1.5세인 약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영국 최고 명문 사립고교와 옥스퍼드대 철학·정치·경제(PPE) 전공,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MBA) 등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부인은 천문학적 재산을 보유한 인도 IT기업 인포시스 회장의 딸이다. 수낵 부부의 재산은 부인이 보유한 인포시스 지분 등 한화로 1조원이 넘는다. 물론 금수저라고 수낵의 총리직 결정 의미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수낵이 금수저라면, 흙수저 출신으로 향후 영국 총리직을 넘볼만한 다른 유색인종 후보도 있다. 파키스탄계인 사지드 자비드 전 보건장관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오바마와 수낵의 예는 이들 사회의 다양성 확대에 대한 상징적인 사례일 것이다. 흑백차별이 법으로 금지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미국 사회에는 불편한 구석이 남아 있다. 평가할 것은 다양성을 넓혀가려는 사회의 일관된 노력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첫 조각 당시 총 26명의 각료 및 각료급 인사 가운데 유색인종이 50%를 차지한 것은 이를 반영한다. 이런 내각의 유색인종 비율은 도널드 트럼프(16%) 때나 버락 오바마(42%)가 집권하던 때보다 높다.



반면 최근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시진핑 '1인 천하' 장기집권 체제가 확립된 중국은 이런 추세와는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중국 최고지도부 7명이 모두 시진핑의 사람들로 구성됐다. 지도부에 1∼2명이라도 있었던 타파벌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마오쩌둥 '1인 천하' 때의 폐단을 막기 위해 도입한 집단지도체제는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는 평가다. 충성파 일색 중국 지도부가 공개되자 시장의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우리 사정도 그리 내세울 만하지 않다. 선거 때만 되면 조그만 땅덩어리 내에서 서로 자신의 지역 출신을 들먹이며 니편 내편 나눠서 싸우고, 종친회·동문회·향우회도 덩달아 춤을 추며 바빠진다. 선거 뒤면 으레 논공행상이 이뤄졌고, 끼리끼리 자리와 이권을 나눠 먹기 바빴다. 이명박 정부 때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사', 박근혜 정부 때 '수첩 인사', 문재인 정부 때는 '캠코더(대선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말도 나왔다. 윤석열 정부라고 크게 변했다는 평가도 나오지 않는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확대를 논의하기에는 아직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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