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카마 '꽃피는 사막'은 "인간 눈에 안 보이는 진화 실험장"

입력 2022-10-21 15:34
아타카마 '꽃피는 사막'은 "인간 눈에 안 보이는 진화 실험장"

화분매개 곤충 눈으로 꽃 색·패턴 분석…인간 눈으로 볼 때보다 더 다양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안데스산맥 서쪽에 약 1천600㎞에 걸쳐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아타카마 사막은 몇 년이 가도 비 한 방울 안 내리는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곳이다.

하지만 이런 극한 환경에서도 5∼10년에 한 번꼴로 9월부터 10월 중순 사이에 드넓은 꽃밭이 펼쳐진다. 이른바 '꽃피는 사막'(desierto florido)으로 올해는 초에 내린 비 덕분에 북부지역에 조성됐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종이 많지만 황량했던 사막을 꽃밭으로 바꾸는 가장 대표적인 식물은 석죽목(石竹目) 몬티아과(Montiaceae)의 '키스탄테 롱기스카파'(Cistanthe longiscapa)다. 20㎝가량 자라는 1년생 식물로 보라와 노랑 꽃이 주종이지만 빨강과 분홍, 하양 등 다양한 색의 꽃이 존재해 꽃피는 사막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칠레 농업연구소(INIA)의 하이메 마르티네스-하름스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C. 롱기스카파가 같은 종 내에서 꽃의 색과 패턴에서 고도의 다양성을 갖게 된 점을 화분매개 곤충의 눈을 통해 분석한 결과를 개방형 정보열람 학술지 '생태 및 진화 프런티어스'(Frontiers in Ecology and Evolution)에 발표했다.

프런티어스에 따르면 연구팀은 지난해 말 칠레 북부 칼데라시 인근에서 이뤄진 개화 현상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곤충은 겹눈을 가져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꽃을 보는데, 곤충의 시각에서 꽃 색과 패턴에 접근했다.



연구팀은 가시광과 자외선에 감도가 높은 카메라와 분광기를 활용해 보라부터 하양에 이르는 총 110개의 C. 롱기스카파 꽃잎을 대상으로 서로 다른 파장의 빛에 대한 반사와 흡수, 투과 등을 측정해 화분매개 곤충이 보는 것과 같은 합성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 결과, 같은 종임에도 인간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나타났다.

예컨대 벌목(目) 곤충은 인간처럼 빨강과 보라, 하양, 노랑 변이종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에 더해 노랑과 보라 꽃 사이에서 자외선 반사도 차이까지 구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꽃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중앙에 과녁과 같은 것이 자외선 형태로 형성돼 화분매개 곤충을 꿀과 꽃가루로 유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분홍과 빨강 변이종은 인간의 눈에는 확연히 구분되지만, 벌목 곤충에게는 비슷한 것으로 나타나 예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C. 롱기스카파 꽃의 시각적 다양성이 몬티아과가 속한 석죽목의 전형인 노랑과 보라, 주황색 색소인 '베타레인'(betalain) 간 차이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베타레인은 꽃 색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가뭄과 염분, 환경적 스트레스에 따른 활성산소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해 사막에서는 아주 유용한 것으로 지적됐다.

연구팀은 C. 롱기스카파가 같은 종 내에서 고도로 다양성을 보이는 것은 꽃 색과 패턴에 대한 화분매개 곤충의 민감도와 선호도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가설을 제기하면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진화적 실험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마르티네스-하름스 박사는 " C. 롱기스카파 꽃 색의 다양성은 화분매개 곤충 종들이 특정 색과 패턴을 선호하면서 변이종을 생식적으로 고립시킬 때 설명이 가능해진다"면서 "현재도 진행 중인 이런 과정은 궁극에는 새로운 경쟁이나 종의 기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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