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추락에…日 무역적자 역대 최악·물가상승률 31년만에 최고

입력 2022-10-20 18:24
수정 2022-10-20 19:03
엔화 추락에…日 무역적자 역대 최악·물가상승률 31년만에 최고

당국 외환시장 개입 전망…"초저금리 유지로 개입 효과 일시적일 듯"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엔화 가치 하락(엔저)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서 엔·달러 환율이 20일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할 수 있는 달러당 150엔을 돌파했다.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의 엔저에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외환 시장에 개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지만, 개입하더라도 효과가 지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엔저가 가속하면서 무역적자가 확대하고 물가가 급속히 오르는 등 일본 경제 전체에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 엔화가치 연초 대비 30% 넘게 떨어져…미일 금리차 확대로 하락 가속

교도통신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후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50엔을 넘었다.

올해 초 달러당 115엔 정도였으나 150엔대까지 상승하면서 35엔가량(30.4%)이나 환율이 뛰었다.

일본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없이 대규모 금융완화를 지속하는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 엔화 약세 원인으로 풀이된다.

일본은행은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유도하도록 상한 없이 필요한 금액의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대규모 금융완화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미 연준은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미국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달까지 3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해 금리 상단을 3.25%로 끌어올린 상태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보다 8.2% 올라 시장 전망을 웃도는 등 물가가 잡히지 않자 다음 달 1∼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연준이 다시 한번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엔·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할 수 있는 달러당 150엔선을 돌파하면서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엔화를 사들이는 외환 개입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일본 재무상은 환율이 150엔대까지 상승한 뒤 기자들에게 "(과도한 움직임이 있으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기존 생각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시장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돌파하면 정부와 일본은행이 다시 대규모 개입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면서도 "그 효과는 일시적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일본은행은 지난달 22일 환율이 달러당 145.90엔까지 치솟자 약 24년 만에 달러를 팔아 엔화를 사들이는 외환 개입을 했다.

그러나 개입 직후 140엔대까지 5엔가량 떨어진 환율은 며칠 지나지 않아 개입 전 수준을 회복했다.

일본은행이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 채무가 너무 많아 금리 인상 시 원리금 부담이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국채 잔액은 작년 말 기준 처음으로 1천조엔(약 9천550조원)을 넘었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1∼2%포인트 올리면 정부의 연간 원리금 부담액이 3조7천억∼7조5천억엔 늘어난다.

일본은행은 또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간신히 살아나기 시작한 소비가 위축되는 등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도 우려하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물가는 오르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을 바꾸고, 임금 상승을 수반하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물가안정 목표를 확실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제를 뒷받침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금융완화를 계속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 엔저에 상반기 무역적자 사상 최악…물가상승률도 2% 후반 예상

엔화 약세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일본의 올해 상반기 무역적자는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일본 재무성이 이날 발표한 2022회계연도 상반기(올해 4∼9월) 무역수지는 11조75억엔(약 105조4천900억원) 적자로 집계됐다. 이는 비교 가능한 통계가 있는 1979년 이후 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상반기 총수출액은 49조5천762억엔으로 전년 동기보다 19.6% 증가했으나 총 수입액이 60조5천837억엔으로 44.5%나 늘었다.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석탄의 국제 가격 상승과 달러당 150엔대에 육박하는 엔화 약세를 배경으로 수입액이 많이 늘어나면서 무역적자가 지속됐다.

과거에는 엔·달러 환율이 오르면 일본의 수출품 가격 경쟁력이 커져 무역수지 흑자에 도움이 됐지만, 일본 기업들이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이전하고 주요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수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무역적자가 이어지면서 일본이 올해 연간 기준으로 42년 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엔화 약세는 저물가가 고착된 일본에서도 소비자물가를 밀어 올려 시민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8월에 2.8% 오르는 등 5개월 연속으로 2%대를 기록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4년 4월 소비세율이 5%에서 8%로 인상돼 물가지수에 반영된 효과를 제외하면 1991년 9월 이후 가장 높다.

일본은행은 오는 27∼28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2022년도 소비자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7월에 발표한 2.3%에서 2%대 후반으로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2%대 후반의 물가 상승은 소비세 증세 영향 등을 제외했을 때 '거품(버블) 경제' 후반 국면이었던 1991년의 2.6% 이후 31년 만이다.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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