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무장관 사퇴, 내각 '대탈출' 신호탄되나…궁지 내몰린 英총리(종합)

입력 2022-10-20 11:02
수정 2022-10-20 16:38
내무장관 사퇴, 내각 '대탈출' 신호탄되나…궁지 내몰린 英총리(종합)

5일새 최측근 2명 사퇴…존슨 낙마 부른 내각 '엑소더스' 재연 조짐

의회 답변에선 야유 빗발…법안 표결-재신임 연계 놓고 집권당내 불만도 폭발



(런던·서울=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황철환 기자 = 영국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일으킨 감세안 발표의 후폭풍에 시달리며 '사퇴는 시간 문제'라는 시선을 받고 있는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다.

지난 주 감세안 실책의 책임을 물어 사실상 경질된 최측근 쿼지 콰탱 재무장관에 이어 정치적 동지였던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도 19일(현지시간) 돌연 사임했다. 이에 전임자인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낙마를 부른 내각 줄사퇴가 가시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BBC, 가디언 등 현지언론이 진단했다.

이날 하원에서 열린 총리 질의응답에서는 트러스 총리가 발언할 때 의석에서 야유가 쏟아졌고, 의원들이 트러스 총리의 사퇴를 대놓고 압박하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아울러, 이날 하원 법안 표결 과정에서 해당 투표가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인지를 놓고 집권당 의원 사이에서 큰 혼란이 벌어진 것도 트러스 총리의 실추된 권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브레이버먼 내무장관은 이날 총리에게 보낸 서신에서 개인 이메일로 공문서를 보내 규정을 위반했다면서 "실수를 저질렀고,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의 뜻을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도 "현재 정부 방향이 우려된다"면서 "문제가 사라지기를 그저 바라기만 하는 건 성공 가능한 접근법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총리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가디언은 브레이버먼 내무장관이 사퇴의 이유로 든 규정 위반은 내각에서 비일비재한 일로, 자리에서 물러나기 위한 형식적인 구실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브레이버먼 장관은 보수당 당대표 경선에 참여했다가 중도 탈락한 뒤 트러스 총리를 지지해 왔으나, 현 정부의 이민정책 기조와 관련해 트러스 총리와 갈등을 빚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브레이버먼 장관은 불법 입국자를 아프리카 르완다로 보내는 등의 강경 대응을 주장해온 반면 경기부양을 우선시하는 트러스 총리는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민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점쳐져 왔다.

결과적으로 지난 14일 콰텡 재무부 장관 경질에 이어 브레이버먼 장관이 이날 사임하면서 트러스 내각은 불과 며칠 간격으로 두 명의 장관을 잃게 됐다.

후임자들은 모두 당대표 경선에서 트러스 총리를 지지하지 않았던 인물들로 채워졌다. 콰텡 장관 후임인 제러미 헌트 재무부 장관과 이날 신임 내무장관으로 지명된 그랜트 섑스 전 교통장관 모두 보수당 경선에서 트러스 총리의 경쟁자였던 리시 수낵 전 재무부 장관을 지지해온 인사들이다. 섑스 신임 내무장관은 최근까지 리즈 트러스 총리 비판에 앞장서기도 했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하원 총리 질의응답(PMQ)에서는 의원들의 쏟아지는 야유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트러스 총리는 이 자리에서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감세안이 실수였다는 사실을 사과하면서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야당의 사임 요구에 "나는 '싸우는 사람'(fighter)이지 '그만두는 사람'(quitter)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의원석에서는 야유와 조소가 쏟아졌다.

이런 반응은 특히 그가 노동당 의원들에게 "경제현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때 더욱 증폭됐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수 시간 뒤 영국 하원에서 진행된 셰일가스 채굴을 위한 수압파쇄공법(fracking·프래킹) 금지법안에 대한 표결 과정에서도 심각한 잡음이 일었다.

보수당 원내총무는 해당 표결을 트러스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로 규정하면서 부결시킨다는 당론에 거스르는 행동을 할 경우 출당조처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표결 직전 그레이엄 스튜어트 기후장관이 신임투표가 아니라고 밝힌 직후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영국 하원은 회의장을 반으로 갈라 찬성은 의장 오른편, 반대는 의장 왼편에 서도록 하는 독특한 투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보수당 원내총무 등이 의문을 표하는 같은당 의원들을 의장 왼편으로 강압적으로 몰아간 것이다.

현장에 있었던 야당 의원들은 보수당 총무들이 고성을 지르며 물리력을 동원했다고 주장하며 불만을 터뜨렸다.

애나 맥모린 노동당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표결후 일부 보수당 의원이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밝혀 당시의 혼란상을 짐작케 했다.

결국 해당 법안은 반대 326명, 찬성 230명으로 부결돼 집권 보수당의 승리로 끝났으나, 보수당에서 의원 40여명이 불참하면서 내분이 심상치 않음이 노출됐다.



논란 속에 보수당 원내총무 등이 사임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으나 트러스 총리는 이를 부인했다. 정부 측은 표결 과정에서 물리력이 사용됐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란 입장이다.

이날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영국 정부의 혼란상과 트러스 총리의 권위 실추를 명백히 보여준 것으로, 트러스 총리를 향한 사퇴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하원 표결 현장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일갈한 보수당 소속 찰스 워커 하원의원은 이후 BBC 방송에 출연해 "총리가 빠른 시간내에 물러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그 일을 감당할 역량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의원은 이미 총리에 대한 불신임 서한을 발송했다.

정치권은 브레이버먼 전 장관의 사임이 줄사표의 신호탄이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앞서 코로나19로 인한 엄격한 봉쇄 중에 총리실에서 파티를 즐긴 사실이 드러난 '파티 게이트' 등으로 사임 압력을 받던 전임 존슨 총리는 수낵 전 재무장관이 사표를 던진 것을 시작으로 각료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대탈출'이 벌어지자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상황이 재연된다면 트러스 총리도 더는 버티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경질된 콰텡 전 장관의 뒤를 이어 경제정책 방향타를 잡은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이나 차기 총리후보로 거론되는 벤 헐리스 국방장관 등은 아직 트러스 총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러스 총리가 당초 자신의 측근으로 채웠던 재무장관과 내무장관 등 두 중량급 인사의 후임을 자신의 당내 반대파 인사들로 채운 것도 총리직 사수를 위해 당내 좀 더 광범위한 지지를 구하려는 고육책일 수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분석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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