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추운 겨울] ⑤ 英50대부부, 한살 손녀와 겨울나기…가스요금 폭등 "한숨만"

입력 2022-10-19 07:15
[유럽, 추운 겨울] ⑤ 英50대부부, 한살 손녀와 겨울나기…가스요금 폭등 "한숨만"

"작년의 두배, 아기 때문에 18℃서 못 낮춰"…노후대책 저축 포기·마트, 저렴한 곳으로

"에너지 업체 막대한 이익 도덕적으로 옳지 않아…부유세 부과 검토해야"

"물가상승률 10%에 저축 못하는 상황…연금생활 이웃들 걱정 많아"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전기·가스 요금이 이미 작년에 비해 거의 두 배예요. 한 살 아기가 있어서 집 안 온도를 더 내릴 순 없는데 걱정입니다."

영국 잉글랜드 북부에 사는 사이먼 마셜(56)씨는 16일(현지시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영국 에너지 요금 급등 상황에 관해 "한숨만 나온다"고 토로했다.

런던이 아닌 다른 지역에 사는 영국인들의 상황을 들어보기 위해 맨체스터에서 20년간 살아온 마셜씨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IT회사에서 일하는 마셜씨는 지은 지 57년 된 방 4개짜리 주택에서 부인과 세 자녀, 그리고 한 살 난 손녀까지 6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그는 "에너지 요금은 이미 작년 보다 거의 배가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10월부터는 정부가 표준가구 기준 상한을 연 2천500파운드(약 400만원)로 동결했지만 우리는 그보다 집이 크고 식구가 많기 때문에 더 많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표준가구는 통상 방 3개짜리 주택에 사는 2∼3인 가구다.

영국 에너지요금 상한은 연 1천42파운드(2020년 10월∼2021년 3월)에서 연 1천138파운드(2021년 4월∼2021년 9월), 연 1천277파운드(2021년 10월∼2022년 3월), 연 1천971파운드(2022년 4월∼2022년 9월)로 가파르게 상승해 왔다.

마셜씨는 에너지요금 뿐 아니라 다른 물가도 많이 뛰었기 때문에 애로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인데 임금은 그만큼 오르지 않았고, 주택담보대출이 있는데 금리가 상승하고 있다"며 "대신 저축을 못 하고 다른 부분의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가던 슈퍼마켓보다 저렴한 곳으로 옮기고 슈퍼마켓 전용 브랜드(PB) 상품을 사는 방법으로 비용을 줄이고 있고, 가족 여행이나 외식, 친구들과 저녁 술자리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절약에도 한계가 있다.

손녀가 있기 때문에 집안 온도를 현재 설정한 18℃보다 더 낮출 수는 없다. 아기 분유를 바꾸는 일은 조심스럽고 기저귀 같은 용품도 품질을 따질 수밖에 없다.

그는 "아기를 키우는 큰딸, 입대를 앞둔 막내아들 외에 세 명이 일하고 있다"면서 "우리 부부는 노후 대비 저축을 못하고, 아이들은 미래를 위한 저축을 못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일을 할 수 없고 연금 등 정부 복지에 기대서 사는 이웃들은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워낙에 받는 돈이 넉넉지 않아서 지금도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또 마셜씨의 집은 이웃들의 집에 비하면 그나마 신축이기 때문에 난방 효율도 괜찮은 편이다.

그는 "이번 겨울이 얼마나 추울지, 앞으로 에너지 위기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걱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셜씨는 세계적으로 가스·석유 가격이 올라가고 에너지 업체들이 도매가격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에너지 요금을 지원하거나 에너지 업체를 국유화할 경우 세금이 들어가고 이는 결국 미래에 갚아야 하는 돈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표준가구 에너지 요금 상한을 동결하고 가구당 400파운드를 지원키로 했다. 당장 이달 에너지 고지서에서 66파운드가 깎여서 나왔다.

마셜씨는 위기 대응을 위해서 에너지업체에 부유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모두 어려울 때 에너지 업체들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주주들에게만 나눠주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며 "이익보다 사람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미 지난겨울에 난방비를 내기 어려운 노인들이 온종일 버스를 타고 다닌 사례를 언급하며 "집권 보수당으로선 원치 않는 방향이겠지만 사람들이 그 정도로 어렵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임스 헌트 영국 신임 재무부 장관은 지난 17일 가계 에너지 요금 상한 동결 등의 지원 기간을 당초 2년에서 6개월로 단축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겨울은 보편적으로 지원하지만, 그 이후에는 취약가구 위주로 챙기겠다는 것이다.

에너지 요금은 정부 개입 전엔 표준가구 기준으로 이달부터 연 3천549파운드(578만원)로 뛸 예정이었고 내년 1월엔 5천387파운드(877만원), 4월엔 6천616파운드(1천77만원) 전망까지 나왔다. 이 정도면 에너지 요금 걱정을 안 할 수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듯하다.

마셜씨는 정부 에너지 지원 축소 발표 후 메신저 대화에서 국제 가스 가격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겨울은 넘기니까 다행이고 최근 가스 가격이 내려온 점은 그나마 희망적"이라면서도 "에너지 업체들이 도매가격 하락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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