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반부패 사정 칼날, 오랜 친구 왕치산도 노린다"

입력 2022-10-17 10:22
수정 2022-10-17 11:17
"시진핑 반부패 사정 칼날, 오랜 친구 왕치산도 노린다"

왕치산, 20차 당대회 불참…몇 년 새 측근 잇따라 숙청

"시진핑, 집권 내내 반부패 캠페인 통해 권력 강화해와"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정 칼날이 오랜 친구인 왕치산 국가부주석도 예외로 두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 보도했다.

WSJ은 10년간 끊임없이 진행돼온 시 주석의 반부패 사정 칼날이 닿지 않는 곳이 없으며, 그 대상에 왕 국가부주석도 포함된다고 전했다.

왕 부주석은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개막식의 주석단 상무위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불참했다.

그는 지난 13일 카자흐스탄 방문 후 귀국한 탓에 방역 규정을 적용받아 10일간 격리 된 것으로 추정됐으나, 당 대회 불참과 관련한 또 다른 사유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게 WSJ의 분석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중국 최고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국가감찰위원회(이하 기율·감찰위)가 왕 부주석의 친구와 조카를 부패 혐의로 조사하며 구금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왕 부주석은 청년 시절 하방(下放·지식인을 노동 현장으로 보냄) 때 5살 적은 시 주석을 만나 우정을 이어오다, 2012년 18차 당대회 때 시 주석에 의해 공산당 상무위원 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 서기로 발탁돼 이른바 '반부패 호랑이' 사냥을 주도했다.

왕 부주석의 이력은 화려하다. 경제정책 전문가, 은행가에 이어 2003년 베이징 시장에 임명돼 당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한 뒤 기율위 서기로서 시 주석의 든든한 '오른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경유착'이 심한 중국에서 왕 부주석에게 늘 '부패 의혹'이 따라다녔다.

특히 2017년 19차 당대회 때 실권을 쥔 상무위원 자리에서 물러난 후 상징적 지위인 부주석에 임명되고 나서 왕치산 주변 인물들에 대한 부패 조사가 잇따랐다.

실제 왕 부주석의 친구이자 부동산 재벌인 런즈창 화위안(華遠) 그룹 회장이 2020년 베이징 제2중급인민법원에서 횡령, 뇌물, 공금 유용, 직권 남용죄로 18년형과 420만 위안(약 7억2천여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WSJ은 "런즈창이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의 코로나19 대처를 비판했다가 숙청됐다"면서 "이는 왕 부주석의 영향력이 쇠퇴한 징후였다"고 짚었다.

신문은 런즈창에 대한 법원 선고가 있은 지 2주 후에 이번에는 왕 부주석의 최측근인 둥훙 중앙기율위원회 중앙순시조 부조장을 조사한다는 내용이 공개됐다고 덧붙였다.



둥훙은 4억6천만위안(약 920억원) 뇌물 수수 혐의로 기율위 조사를 받은 뒤 기소돼 1심을 거쳐 2심에서 사형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다. 사형 집행유예는 집행을 2년간 유예한 뒤 수형 태도 등을 고려해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는 중국 특유의 사법 제도다.

중국 당국은 작년에도 왕 부주석과 친분이 깊은 하이난성의 재벌인 HNA그룹의 천펑 회장을 구금했으며, 이와 관련해 왕 부주석의 조카이자 HNA그룹의 고위 간부인 야오칭을 구금 조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왕 부주석은 공직 사퇴를 하지 않은 채 직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중국을 대표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기율·감찰위의 조사를 받고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물러난 고위급 인사들이 지난해 약 62만7천 명에 달했는데, 이는 2012년의 4배에 달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WSJ은 짚었다.

이로 미뤄볼 때 2012년 11월 18차 당 대회를 계기로 집권한 시 주석이 강도 높은 반부패 캠페인을 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시 주석이 부패 호랑이잡이를 명분으로 비게 되는 고위직에 측근을 임명하는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해왔다고 짚었다.

집권 전 후진타오·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배경으로 한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과 태자당의 견제를 받은 시 주석이, 반부패 캠페인으로 중국 공산당의 실질적인 권력인 중앙위원회에 자신의 지지 세력을 꽂았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당장(黨章·당헌)은 "당의 최고 영도기관은 당의 전국대표대회와 그것이 만드는 중앙위원회"라고 규정하고 있다.

올해 들어 각 지역과 부문별로 선출된 20차 당 대회 대의원 2천296명은 이번에 향후 5년간 중국을 이끌 새 중앙위원 200여 명을 선출한다.

중앙위원 중에는 중앙정치국 위원과 국무위원, 각 성과 주요 도시 당정 책임자, 중앙 각 부처 주요 책임자, 중앙 군사위원회 위원 등 장관급 이상의 고위 인사들이 포함되는 데 이들이 중앙정치국 위원 25명을 호선하고, 그 가운데서 7명의 상무위원이 추려진다.

WSJ은 시 주석은 정적에 대해선 수백 페이지의 증거를 조용히 모으라고 지시한 뒤 옥죄는 스타일이라고 짚었다.

시 주석은 전날 당 대회 업무보고에서도 부패는 당의 생명력과 전투력을 위협하는 최대 악성종양이고 부패척결은 가장 철저한 자아혁명이라고 강조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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