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 시대 '빚투 그림자', 중산층·고신용자부터 덮친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 비율 증가폭 소득 4분위>5분위>3분위 순
가계대출서 고신용자 비중 77%까지 상승…이자 부담 커질 듯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 최근 5년간 중산층 이상 고소득 가구의 금융부채가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일 한국은행이 석 달 만에 '빅 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는 등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꺾이지 않으면서 이들 중산층 이상 가구가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13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4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2017년 113.1%에서 지난해 143%로 4년 동안 29.9%포인트(P) 상승했다.
2017년 4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5천560만원, 금융부채는 6천288만원으로 부채가 738만원 더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처분가능소득과 금융부채가 각각 6천93만원과 8천711만원으로 연간 기준으로 소득보다 부채가 2천618만원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4분위에 이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2017년 103.7%에서 2021년 122.8%로 19.1%p 증가했고, 3분위가 13.3%p(2017년 126.7%→2021년 140.0%) 상승했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2분위의 이 비율은 2017년 117.9%에서 지난해 127.5%로 9.6%p 상승하는 데 그쳤고, 소득 하위 20%인 1분위는 같은 기간 115.3%에서 106.8%로 오히려 8.5%p 하락했다.
즉 소득 기준으로 중산층 이상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3∼5분위의 금융부채 비율은 큰 폭 상승한 반면 저소득층인 1∼2분위는 오름폭이 작거나 오히려 하락했다.
이는 2017년 말 이후 부동산 가격 상승, 가상화폐 열풍에 이어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이후 유동성 확대 기간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 이상이 빚을 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용등급별 가계대출 비중 추이에서도 이 같은 경향은 잘 드러난다.
한국은행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전체 가계대출(은행, 비은행 모두 포함)에서 고신용자(신용평가점수 840점 이상)의 비중은 69.7%에 그쳤지만 2018년 말 71.3%, 2019년 말 73.1%, 2020년 말 75.3%, 2021년 말 76.9%까지 상승했다.
반면 중신용자(665∼839점) 비중은 2017년 말 24.5%에서 지난해 말 19.9%까지 떨어졌고, 저신용자(664점 이하) 비중은 같은 기간 5.7%에서 3.3%로 축소됐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강화 등 잇따라 가계대출 규제 방안을 내놓으면서 중저신용자는 아예 금융기관 대출 문턱을 넘기 어려웠던 반면, 소득이나 상환 능력에 여력이 있는 고신용자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빚을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 이후 시작된 금리 인상 랠리로 인해 중고소득층·고신용자의 이 같은 '빚투'가 서서히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해 8월 26일 1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p 올리면서 이른바 '통화정책 정상화' 시작을 알렸고, 이후 전날까지 약 1년 2개월간 모두 여덟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기준금리는 0.50%에서 3.0%로 2.50%p 높아졌고, 이로 인해 금융부채 비율이 빠르게 늘어난 중고소득층, 고신용자들의 이자 부담도 급격하게 늘어나게 됐다.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만큼 아직은 금융기관 연체율 상승 등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지는 않지만 '빚투의 그림자'가 갈수록 이들 가구를 짓누를 것으로 보인다.
한은 가계부채 현황 자료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50%p 인상되면 전체 대출자의 이자 부담액은 6조5천억원 불어난다.
한은은 최근 높은 수준의 물가 상승률이 계속되는 만큼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며, 이로 인한 가계의 고통 역시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전날 금통위 후 기자회견에서 "국제경제 상황 때문에 금리가 올라가는 속도가 이전에 비해 빠른 시기"라면서 "어떤 면에서는 가계의 고통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물가를 잡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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