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으로 정전된 쿠바서 반정부 시위…'불을 켜라' 구호

입력 2022-10-02 13:59
허리케인으로 정전된 쿠바서 반정부 시위…'불을 켜라' 구호

"공산국가서 보기 드문 거리 시위"

한때 인터넷 차단…"시위 보도 막으려는 시도" 의혹 제기돼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허리케인 '이언'이 쿠바를 강타해 발생한 정전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자 수도 아바나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고 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지난달 27일 최고 시속 200㎞가 넘는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 이언이 쿠바 서부 지역을 통과하면서 쿠바 전역에서 발생한 정전이 아직 해결되지 못하자 수도 아바나에서 산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아바나에선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이틀에 걸쳐 정전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벌어졌다.

공산국가인 쿠바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시위는 주로 해가 진 뒤에 정전으로 어두워진 도심에서 이뤄졌으며, 수백 명 규모의 시위대가 냄비나 프라이팬을 두드리면서 "불을 켜라", "자유" 등의 구호를 외쳤다.

미겔 디아즈카넬 쿠바 대통령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시위는 대체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지난달 30일 밤 아나바 플라야에서 진행된 시위에 참여한 카를로스 펠리페 가르시아는 더위에 윗도리를 벗고도 땀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가르시아는 "지옥에 있는 것 같다"며 "이것이 우리가 거리에 나온 이유다. 앞으로도 계속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쿠바 전력청은 지난달 30일 정오까지 아바나 지역 주택의 60%에 전기가 다시 공급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지역에서 불안이 커졌다며 주말까지 아바나 대부분 지역에 전력이 다시 공급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바나에서 우체부로 일하는 호르헤 마리오 곤잘레스(57)는 이날 자신의 집에 다시 전기가 들어왔고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면서도 "정부가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우리는 아직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바나 시 관계자는 오히려 시위 때문에 전력 복구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목격자를 인용해 이날 플라야에서 진행된 시위의 규모가 커지자 보안군이 탄 트럭 여러 대가 주요 도로를 봉쇄해 시위대의 행진을 차단했다고 전했다.

또 수백 명 규모의 친정부 시위대가 "내가 피델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반정부 시위대에 맞불 시위를 벌였다. 피델은 쿠바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이름이다.

친정부 시위대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야구 방망이나 나무 막대기를 들었다.

하지만 양측이 충돌하거나 보안군이 시위대를 체포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쿠바에선 지난달 30일 밤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통화나 메시지 전송이 차단되는 등 인터넷 연결이 차단됐다.

인터넷 통제 감시 사이트 넷블록스의 알프 토커 국장은 "쿠바에서 어제 또 비슷한 시각에 인터넷이 끊겼다"면서 "시위에 대한 언론 보도를 막기 위해 인터넷 차단이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쿠바 정부는 이에 대한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일부 주택과 아파트 단지에 전기가 다시 들어오기도 했으나 주민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주민 안드레스 모라는 "사람들이 항의를 하면 당국은 전기를 넣어준다"며 "그러나 이미 음식이 모두 썩어 우리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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