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비판에 '마이동풍', 주민투표 강행 …크림반도 합병 '닮은꼴'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에서 합병 주민투표를 일제히 추진하면서, 2014년 크림반도 강제 합병 선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미국·유럽 등의 맹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사천리로 주민투표를 추진하는 러시아 측 현재 모습이 8년 전 크림반도 합병 때와 거의 똑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2014년에도 크림반도에서 러시아 합병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는 압도적인 찬성(96.6%)이었다. 크림반도에는 친러시아 성향 주민 비율이 높아 이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미국, 유럽 국가들은 투표 결과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투표 자체가 우크라이나 헌법에 위배돼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우크라이나 헌법에 따르면 영토 변경을 묻는 주민투표는 해당 지역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역의 주민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실제로 당시 친러시아 성향인 크림반도 주민 사이에서 러시아 합병을 원하는 여론이 높았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전체로 따지면 합병 찬성 비율이 약 30%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합병을 밀어붙였다. 투표를 전후해 크림반도 전역에 투입한 러시아군까지 활용하면서 약 20일 만에 합병 작업을 속전속결로 마무리했다.
서방은 러시아에 고강도 제재를 부과해 응수했으나, 그 합병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이달 23∼27일 합병 주민투표가 진행될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등 4개 주에서도 과거 크림반도와 비슷한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고 NYT는 전망했다.
국제사회가 아무리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러시아를 비난해도, 푸틴 대통령이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투표 결과를 내세워 강제 합병하려 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동북부 헤르손 지역뿐 아니라, 러시아가 완전 점령했던 루한스크 지역 일부까지 수복하는 등 반격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자 푸틴 대통령이 더이상 합병과 관련한 결정을 미룰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분석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최근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중국·인도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우려'를 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외교적으로도 다소 차질을 빚는 모양새다.
NYT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을 병합하면, 아무리 국제사회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해도 이 지역을 러시아 본토로 방어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전세계로 보낼 수 있다"며 "특히 핵무기가 등장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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