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만에 바뀐 K-택소노미…'원전포함' 방침에 논란 재점화

입력 2022-09-20 12:00
9개월만에 바뀐 K-택소노미…'원전포함' 방침에 논란 재점화

환경부 "원전 녹색분류체계 포함 확정…사회적 합의 존재"

원전 가장 싸고 탄소배출량 제일 적다지만 안전과 폐기물이 문제

사고저항성핵연료 2031년에야 상용화…고준위 방폐장은 '하세월'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정부가 '친환경 경제활동' 기준인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을 포함키로 하면서 원전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특히 환경부가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한다는 계획은 여론과 관계없이 바꿀 수 없다고 밝혀 찬반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원전을 포함하는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을 20일 공개했다.

원전은 현시점에서 '가장 싸고 탄소배출량이 제일 적은 발전원'으로 평가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0년 12월 내놓은 2025년 예상 발전원별 '균등화 발전비용'(LCOE·7% 할인율 적용)을 보면 원전은 '1MWh(메가와트시)당 53.3달러(약 7만4천원)'로 석탄발전(75.59달러), 가스복합발전(86.76~95.89달러), 태양광(98.1달러), 육상풍력(113.3달러), 해상풍력(161.0달러)보다 낮았다.

LCOE는 탄소배출량 등 환경비용을 비롯해 발전설비 운영에 드는 모든 비용을 반영한 발전원가다.

유럽연합(EU) 합동연구센터(JRC)가 작년 3월 공개한 '원자력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주기평가(LCA)를 했을 때 에너지 1GWh(기가와트시) 생산 시 온실가스 배출량은 원전이 28t(톤)으로 석탄(888t)·석유(735t)·천연가스(500t)·태양광(85t)보다 적었고 풍력(26t)보다는 많았다.

그러나 원전은 '안전'과 '폐기물'이라는 큰 문제를 가진 발전원이다.

이에 원전이 포함되면 그린워싱(친환경이 아님에도 친환경으로 위장하는 행위)을 방지한다는 녹색분류체계 의미가 퇴색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는 경제활동은 '환경목표를 달성하면서 다른 환경목표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DNSH)라는 기본원칙에 부합해야 하는데 방사성폐기물이 나오는 원전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4월 실시한 녹색분류체계 원전 이해관계자 간담회에서 환경단체들은 "화석연료가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돼 이미 신뢰성을 잃었는데 원전이 포함되면 외국에서도 (한국의) 녹색분류체계를 신뢰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정부는 EU와 비슷하게 원전 신규건설과 계속운영은 '2031년 이후 사고저항성핵연료(ATF) 사용'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 계획 존재와 그 실행을 담보할 법률 제정' 등을 만족해야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는 활동으로 인정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미국 에너지부는 ATF를 '원전이 정상 운영될 때 현재 지르코늄-이산화우라늄 기반 핵연료에 견줘 성능이 더 낫거나 비슷하면서도 외부전력이나 사람의 개입으로 작동되는 노심 냉각기능이 상실된 상태에서도 건전성이 장시간 유지되는 핵연료'로 정의한다.

ATF는 세계적으로 상용화되기 전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앞섰다고 평가받는 미국도 2026년 이후에야 ATF를 상용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에선 제4차 원자력 연구개발사업의 하나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연구를 통해 ATF 기초응용기술을 확보했다.

이후 ATF는 제5차 원자력 진흥종합계획 중점추진과제로 선정됐고 현재 연구 수준과 인허가 등 후속 절차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빨라야 2031년에야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ATF를 사용한다고 원전 위험성이 '0'이 되지 않는데 ATF 상용화까지도 갈 길이 먼 상황에서 'ATF를 사용하면 원전은 친환경'이라는 도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는 ATF보다 더한 난관이 예상된다.

작년 12월 정부가 확정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는 '부지 선정 절차에 착수하고 20년 안에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고 37년 이내에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한다'라는 방침이 담겼다.

문제는 '부지 선정이 언제 될 수 있느냐'이다.

일반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장을 만들 때도 매번 홍역을 치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터를 정하기까지 큰 난항이 예상된다.

세계에서 처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 처분시설을 마련한 핀란드의 경우 1983년에 부지 확보에 착수해 2001년 부지를 선정했다. 핀란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은 2025년에 가동될 예정이다.

프랑스와 스웨덴은 각각 1983년과 1992년 처분시설 부지 확보에 착수해 1999년과 2009년에 부지를 선정했다.



정부는 지난해 녹색분류체계를 발표하면서 원전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유럽연합(EU) 등의 동향과 국내 여건을 고려하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할지 지속해서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탈원전'을 추진하는 정권에서 '친원전' 정권으로 정권이 교체되자 환경부가 사회적 합의 없이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한다는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개정안을 마련할 때 '학계·전문가·시민사회·산업계' 의견을 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영진 의원이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14차례 간담회 가운데 전문가가 아닌 시민사회 의견을 들은 경우는 4차례에 불과했다.

특히 환경부는 8월 17일 진행된 간담회에서는 청년단체들로부터 "이해관계자 폭을 넓히고 의견을 자주 수렴하라"라고 지적받기도 했다.

이날 환경부는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을 가지고 공청회 등으로 여론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전에 녹색분류체계를 포함한다'라는 방침은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여론은 녹색분류체계에 해당하는 활동을 가르는 조건에만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원전 포함 여부는 변경할 수 있지 않다"라면서 "원전을 포함하는 것은 확정됐다"라고 말했다.

조 과장은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고도 강조했다. 탈원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한 가운데 10여 차례 간담회만으로 원전을 친환경으로 규정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환경부 여론 수렴이 요식행위에 그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원전 녹색분류체계 포함이 당장은 상징적 의미만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녹색분류체계는 투자자 등이 녹색경제활동을 구분할 때 참고하는 '가이드라인'으로 강제되는 규정이 아니다.

원전 건설과 운영은 '국가프로젝트' 성격이 강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다고 촉진되거나 포함되지 않는다고 자금조달 등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는다.

다만 이번 녹색분류체계 개정안대로 원전 기술 개발이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받게 되면 해당 분야에 민간투자가 유도될 것으로는 기대된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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