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굿바이 여왕!'…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본 세기의 장례식
한국언론 유일, 사원 앞 취재…밤 새 기다린 추모객들 눈물의 배웅
왕실 권위와 화려함 극치 운구행렬…'경제 어려운데 과도하다' 비판도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최장 70년 재위한 군주 엘리자베스 2세는 19일(현지시간) 런던을 가득 채운 추모객 수백만명의 배웅을 받으며 먼 길을 떠났다.
웨스트민스터부터 버킹엄궁을 거쳐 하이드파크 인근 웰링턴 아치까지 여왕 장례 행렬이 지나는 길을 지키고 선 이들은 여왕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보내고 눈물을 닦았다.
연합뉴스는 한국 언론 중에 유일하게 장례식 취재 승인을 받았고, 몇 군데 취재 구역 중에서도 중계 TV 등을 제외하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배치됐다. 서쪽 입구가 바로 보이는 장소였다.
이날 런던은 아침엔 쌀쌀한 초가을 날씨였지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장례식이 끝난 무렵에는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정오가 조금 지나 윈저성까지 마지막 여정에 나서는 여왕의 관이 포차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졌다.
포차를 끄는 해군 142명이 고개를 들어 자세를 잡고 여왕의 관을 들어 옮긴 근위병들이 자리로 찾아와 검은색 높은 모자를 썼다.
낮 12시 19분 군악대의 웅장한 연주가 시작되고 여왕의 관이 이동을 시작했다. 찰스 3세 국왕 등 여왕의 네 자녀와 찰스 3세의 두 아들 윌리엄 왕세자 등이 뒤 따라 걸었다.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으로 군 직책이 박탈된 앤드루 왕자와 왕실에서 나간 해리 왕자는 군복을 입지 않았다.
군인 약 3천명이 참가하고 길이가 1㎞ 넘는 화려한 장례 행렬은 마지막까지 존경과 사랑을 받은 여왕을 향한 예우를 보여주는 동시에 영국 왕실의 권위를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노란색과 빨간색 왕기에 덮인 관이 천천히 움직이자 관 위에 올려진 여왕의 제국 관(Imperial State Crown)에 박힌 커다란 보석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옆에 있던 영국 보수성향 신문의 기자는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장례식은 오전 11시인데 웨스트민스터 인근은 이날 오전 6시40분 이미 추모 인파로 가득 차서 앞으로 나가려면 사람들 틈을 헤집어야 했다.
런던시는 오전 9시20분께 장례 행렬을 볼 수 있는 주요 지역은 만원이라고 공지했고 버킹엄궁 앞은 오전 8시에 이미 진입이 어려웠다.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너서 직진하면 웨스트민스터역이 나오고 조금 더 지나 왼쪽으로 길을 건너면 웨스트민스터 사원이지만 보안이 철통 같아서 접근할 방법이 막막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미국, 프랑스 등 세계 정상과 왕족 약 500명이 집결하는 초유의 행사를 앞두고 런던은 초비상이었다.
결국 6차례 이상 취재 패스를 보여주고 옥신각신까지 한 끝에야 평소 5분 거리를 거의 40분 걸려서 도착했다.
웨스트민스터 주변에 있는 추모객들은 적어도 이날 해가 뜨기 전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근처 지하 보도에 있는 화장실에 줄이 길게 늘어선 이유였다.
웨스트민스터궁 앞 윈스턴 처칠 동상 맞은편 건물의 높은 턱에 올라 앉아있던 서맨사(44)씨는 "어제 11시간 줄을 서서 밤 11시에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여왕 관에 참배를 하고 바로 이 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자리에서 여왕 장례 행렬을 보려고 밤 새 기다렸다"며 "밤에는 괜찮았는데 오히려 지금이 춥다"고 말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휴가 중에 서거 소식을 들었는데 실감이 나지 않아서 밸모럴성까지 가서 확인했다"며 "2시간 거리 포츠머스에서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는데 원래 일하는 날이지만 동료들이 배려해준 덕에 여왕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옆 퀸 엘리자베스 센터에는 미디어 센터가 설치돼있고 그 앞에는 3단짜리 미디어 스탠드가 서 있었다. 위쪽 2개 단은 방송용이고 아래 쪽에는 영국과 해외 언론의 펜과 사진기자 약 50명이 배치됐다.
간이 짐 검사를 받고 미디어센터에 들어간 뒤 미디어 스탠드 입장을 위한 파란색 비표를 한 장 더 받았다. 추가 신원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전 8시가 지나자 버스가 오가며 장례식 조문객들을 실어 날랐고 오전 9시 24분이 되자 사원의 벨이 1분 마다 울리기 시작했다.
이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이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도착하고 각국 왕족과 영국 전현직 총리 등이 입장했다.
차를 따로 타고 온 바이든 대통령 부부 외에 윤석열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버스를 타고 온 정상들은 서문이 아닌 북문으로 들어갔다.
여왕의 증손자녀이자 윌리엄 왕세자의 자녀인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도 엄마인 케이트 왕세자비 등과 함께 도착했다.
1시간 장례식이 끝나갈 무렵 안에서 영국 국가 '하느님 국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 노래 소리가 들렸다. 찰스3세는 어머니와 이별하며 감정이 솟구친 듯 했다.
밖에서는 대기하던 여성 해군 한 명이 탈진해 쓰러졌다. 그는 곧 회복했지만 행렬에서 빠지면서 속상해서 울 듯한 표정이었다.
여왕 장례 행렬이 떠난 뒤 조문객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밖으로 나와서 타고 돌아갈 버스를 한참 기다렸다. 그 중에는 스페인 국왕 등도 있었다.
옆에 있던 한 영국 주요 신문의 기자에게 찰스 3세 대관식은 언제할 것 같냐고 묻자 그는 "세상에, 이쯤되면 대관식은 안해도 될 것 같지 않냐"고 농담을 하면서 "경제가 어려운데 막대한 돈을 쓴다고 화가 난 영국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왕 서거를 슬퍼하며 우는 영국인들의 모습 위에 BBC의 북한 뉴스 오디오를 얹은 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고 덧붙였다.
mercie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