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인출 막힌 레바논 시민의 은행 공격 확산…하루 5건

입력 2022-09-17 16:37
예금인출 막힌 레바논 시민의 은행 공격 확산…하루 5건

위협사격후 자살소동·장난감 총 위협도…"은행이 속인다" 시민들도 지지

궁지에 몰린 은행연합회, 사흘간 휴업 선언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중동 국가 레바논에서 예금인출 제한 조치로 은행에 맡긴 돈을 찾지 못하는 예금자들이 총기를 소지한 채 은행을 공격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오전 수도 베이루트에 있는 블롬(BLOM)은행 지점에 총을 든 남성이 침입해 자신의 계좌에 예치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아베드 수브라로 알려진 이 남성은 이후 총기를 은행 보안요원에게 넘기고 해가 질 때까지 은행 직원들과 예금 인출 문제를 논의했다.

은행에 30만 달러를 맡겼다는 그는 그 가운데 4만 달러 인출을 요구했다. 그는 지역유력인사의 중재로 협상을 마쳤지만 이날 돈을 찾지는 못했다.

총기를 소지한 채 은행에 들어가 소란을 피운 것은 중범죄지만, 당국은 그를 체포하거나 구금하지 않았다.

또 이날 베이루트에 있는 레바논걸프은행, 리바노-프랑셰즈 방크, 뱅크메드 은행의 지점에서도 총기를 소지한 예금자들의 '과격한' 예금 인출 요구가 잇따랐다.

군인 출신의 한 예금자는 지점 내에서 위협 사격을 했고,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 자살하겠다며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모함마드 알-무사위라는 남성은 장난감 총기로 은행 직원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그는 "레바논의 은행 시스템은 우리를 속이고 있다. 신발 짝 만도 못 하다"고 비난했다.

은행을 습격한 이들 중 일부는 예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돌려받거나 돌려받기로 한 뒤 자진해서 돌아갔고, 일부는 보안 당국에 체포됐다.

소동이 벌어진 은행 지점 밖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은행 습격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환호했다.

지난달 은행 습격의 포문을 열었던 바삼 알-셰이크 후세인 씨는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있는 한 이런 일을 계속 보게 될 것"이라며 "그들이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가. 그들에게 다른 해결책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4일 내외신의 주목을 받았던 한 여성 예금자의 장난감 총 은행 습격을 포함해 이번 주에만 은행 7곳이 표적이 됐다.



예금자 단체인 '예금자 연합'은 이날 5건의 은행 습격을 '예금자 봉기'로 규정하고 은행의 인출 제한에 맞선 정당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예금자들의 은행 습격이 들불처럼 번지자 레바논 은행연합회는 오는 19일부터 사흘간 모든 은행의 영업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2019년 시작된 레바논의 경제난은 코로나19 대유행과 2020년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를 만나면서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런 가운데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는 90% 이상 폭락했다. 세계은행(WB)은 이런 레바논의 경제 위기를 19세기 중반 이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심각하고 장기적인 불황으로 진단했다.

레바논 은행들은 '뱅크런'(은행의 예금 지급 불능을 우려한 고객들의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을 막기 위해 대부분 고객의 예금 인출을 제한했다.

달러 인출은 모두 막았고, 현지 통화인 파운드화로 인출을 원하면 1997년부터 유지돼온 고정환율(1달러당 1천517파운드)을 적용하기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암시장에서 1달러는 약 3만8천500파운드 선에 거래된다.

레바논 경제는 해외 취업자들의 달러 송금 의존도가 상당하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척이 달러를 보내와도 정식 은행 거래를 통하면 엄청난 손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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