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국, 고유가에 오일달러 풀어 이슬람권 기반 다지기"
사우디 등 대호황 속 저개발국, 강달러·긴축에 신음
"이집트·파키스탄 등에 '생명줄' 놓고 외교 후방지원 요구"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걸프 국가들이 어려움에 빠진 주변 국가에 적극적으로 지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고유가 시기 원유수출 실적 호조로 지갑이 두둑해진 산유국들이 외교적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4일(현지시간) 경제난에 허덕이는 이집트에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3개국이 올해에만 220억달러(약 30조원)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국가가 이집트 중앙은행에 280억 달러를 예치하기도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덧붙였다.
3개국은 또 대홍수로 황폐해진 파키스탄에도 100억달러(14조원) 이상을 지원했다. 파키스탄 역시 경제난에다 반복된 홍수로 해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국부 펀드를 이용한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부펀드는 최근 몇 개월 새 튀르키예(터키)의 제약사를 사들이고, 이집트의 비료회사, 은행, 물류회사 등의 지분도 적극적으로 매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한 이후 에너지·식료품 가격은 하늘 모른 듯 치솟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각국은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보기 드문 달러 강세까지 겹치면서 재정난에 빠진 국가들은 이자에도 허리가 휘고 있다.
반대로 중동 국가들은 고유가 덕분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앞으로 4년간 중동·북아프리카 산유국들이 고유가 덕분에 추가로 벌어들일 수익이 무려 1조3천억달러(1천813조원)에 달한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데이비드 버터 중동 연구원은 "중동 국가들이 막대한 흑자를 누리고 있다"며 "도움이 필요한 인근 동맹국에 기금 일부를 옮기는 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원이 절실한 국가에는 중동 국가들의 지원이 생명줄이 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걸프 국가의 지원에 힘입어 파키스탄이 IMF에서 4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이집트도 산유국 지원을 근거로 IMF에서 구제금융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하드 아주르 IMF 중동·아시아국장은 "걸프 국가들이 금융 지원으로 IMF 구제금융으로는 채울 수 없는 각국의 지원 수요를 채워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지원은 대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특히 이집트의 경우 수에즈 운하를 보유하고 있고, 아랍권에서 가장 큰 군대를 보유한 국가라는 점에서 경제·지정학적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야스민 파루크 비상임 연구원은 "사우디, UAE, 카타르가 이집트를 지원하고 나선 것은 이집트의 생존과 안정이 각국에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이들 국가는 외교 분야에서 이집트의 후방 지원을 바라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동의 지정학적 지형이 크게 변화한 덕분에 이런 지원이 가능해졌다는 시각도 있다.
2017년만 해도 사우디, UAE, 이집트는 카타르가 테러단체를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국경·영공·항구를 봉쇄하고 금수조치를 한 바 있었다. 이 조치는 작년에야 마무리됐다.
그러나 13일 압델 파타 이집트 대통령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카타르 도하를 찾아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군주(에미르)를 만나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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