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진의 거장 윌리엄 클라인 96세로 별세

입력 2022-09-13 13:47
현대 사진의 거장 윌리엄 클라인 96세로 별세

분주하면서도 폭력적인 도시 모습 생생히 전달…패션 사진에서도 한획

베트남전, 무하마드 알리 등 소재로 한 영화도 제작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현대 사진의 거장 윌리엄 클라인이 9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고 AFP통신이 12일(현지시간) 전했다.

클라인의 유족은 이날 부고 성명에서 부친이 평온하게 운명했다고 전하고, 그가 바란 대로 가족장을 치른 뒤 일반인을 위한 추모 행사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AFP는 미국 뉴욕의 국제사진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회고전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클라인은 분주하면서도 폭력적인 도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사진으로 유명하다.

거리에서 시민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찍은 사진을 즐겨 찍었고 패션 사진에도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처음으로 패션모델의 사진을 스튜디오 밖에서 찍는 등 거리와 패션 사진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작품 대부분을 차지하는 흑백 사진들은 중심에서 벗어난 사물들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구도가 특징이다.

한 젊은이가 얼굴을 찌푸린 채 총구 끝을 카메라에 바짝 들이대는 모습을 포착한 '권총(GUN) 1'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잡지 '폴카' 편집장인 알랭 제네스타는 "클라인은 마치 복싱을 하듯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뉴욕 국제사진센터는 클라인이 "모든 면에서 선지적이어서 당대의 사회·예술적 기조를 무시하고 독창적인 길을 뚫었다"며 "혁신적이고 비타협적으로 세계 모든 사진작가를 위해 새로운 문을 열어줬다"고 논평했다.

1926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초교파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유럽을 사랑하게 됐고,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르 밑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는 건축가의 꿈을 갖고 있었으나 어느날 포커 게임에서 이겨 처음 독일제 롤라이 플렉스 카메라를 손에 넣은 뒤 사진에 매료됐고, 파리를 상징하는 기념물을 찍기 시작했다.

패션 잡지 보그의 예술 감독인 알렉산더 리버먼은 클라인의 초기 추상작품들을 눈여겨보고 그를 채용했다.

당시 클라인의 나이는 26세였다.

그는 1956년 고향인 뉴욕의 거리 풍경을 찍은 '인생은 즐겁고, 뉴욕에서의 삶도 좋아라'는 제목의 사진첩을 파리에서 출간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아 사진첩은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눈에 띄었고, 그는 '카비리아의 밤' 조감독 자리를 맡기도 했다.

클라인은 훗날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나의 신조는 '무엇이든 좋다'는 것이다. 규칙도 없고 제한이나 한계도 없다"고 말했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의 한 명으로 평가받는 그는 영화 제작에도 나서며 사회통념에 도전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 공산 진영인 북베트남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본 '머나먼 베트남에서'를 제작했고, 1974년에는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했다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한 미국 흑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에 관한 영화인 '위대한 무하마드 알리'를 만들었다.

미국 흑인들의 투쟁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그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알리는 진정한 정치인의 기질이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알리 영화를 제작하면서 마이애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흑인 인권운동가인 맬컴 엑스와 조우했는데, 그는 훗날 "아무도 그의 옆에 앉으려 하지 않아 내가 그 옆으로 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0년대 다시 사진의 세계로 돌아왔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여러 권의 사진첩을 출간했다.

그는 또 자동차 회사인 시트로엥과 르노 등 프랑스 유명 기업들을 위한 수백 편의 광고를 제작했다.

그는 부인 잔 플로랭을 만난 뒤 줄곧 프랑스에서 살았고, 아내가 2005년 사망할 때까지 함께 지냈다.

kj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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