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포토] 엘리자베스 여왕의 패션, 그속에 숨겨진 비밀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 이후 그의 패션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무려 70년 동안 재위한 엘리자베스 여왕만큼 사진이 많이 찍힌 인물도 전 세계에서 드물 겁니다.
영국 군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으로서 여왕은 그 권위에 걸맞은 스타일과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패션에도 섬세하고 정교하게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미국 CNN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여왕 패션의 출발은 아버지이자 영화 '킹스 스피치'의 실제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말더듬이' 조지 6세 국왕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형인 에드워드 8세가 왕위에 오른 지 1년도 되지 않아 미국 여성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겠다며 왕위를 포기하자 느닷없이 왕이 됐습니다.
왕실의 권위가 흔들리던 그때, 조지 6세 국왕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한 방편으로 아내와 딸들에게 클래식한 의상을 입도록 했습니다.
1952년 조지 6세가 폐암으로 서거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25살의 어린 나이에 왕좌에 오릅니다.
대관식에 입을 가운을 위해 제출된 의상 디자인만 9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영국 왕실이 전 세계인의 시선이 쏠릴 대관식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절제되고 격식 있는 의상으로 영국 국민들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안겼습니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파경과 뒤이은 다이애나비의 비극적인 죽음 등 왕실이 구설에 휘말릴 때일수록 그녀는 '여왕 복장'을 빈틈없이 착용함으로써 왕실의 위엄을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여왕의 패션에는 몇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선 안 되고, 주름이 최대한 적게 생겨야 합니다. 이를 위해 왕실 의상 디자이너들은 옷을 제작하기 전에 직물을 먼저 테스트했다고 합니다.
돌풍이 몰아쳐도 드레스나 치마가 들리지 않도록 끝단 디테일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전해집니다.
옷을 만든 뒤 선풍기를 돌려 바람에 휘날리지 않는지 테스트했다는 소문까지 있습니다.
땀자국이 나지 않도록 탈부착이 가능한 겨드랑이 패드까지 착용했습니다. 해외 순방을 갈 경우에는 방문하는 국가의 풍습과 문화를 의상에 녹여내기도 했지요.
여왕은 외출 시 항상 모자와 장갑을 착용하는 등 예법을 중시했습니다. 중간 굽의 신발과 고풍스러운 핸드백도 빼놓을 수 없죠.
여왕이 가장 좋아했다는 영국 디자이너 스튜어트 파빈은 여왕의 의상이 어디서 누굴 만났는지에 따라서 완벽히 분류돼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파빈은 "만약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라면 한번 입었던 드레스를 또 입지 않을 것"이라며 "그래서 여왕을 만나는 사람들은 여왕이 매번 다른 옷을 입는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컬러풀한 옷도 꺼리지 않았습니다.
키 163㎝로 영국 기준으로는 그리 크지 않은 여왕이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행사와 장소에서 눈에 잘 띌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CNN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남긴 많은 유산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옷이 국가를 결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이라며 "70년간 통치한 여왕은 패션과 이미지 메이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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