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바이든의 인정' 받은 아르메니아계가 주는 교훈
美의회 결의 15년 후에도 대통령 공식선언까지 못간 위안부 문제와 대조
김동석 "韓정부 영향력 탓 한일분쟁으로 변질…동포와 정책적 관계 맺어야"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지난 7월 30일(현지 시각)은 미국 하원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해 일본 정부에 분명한 시인과 사과를 촉구한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 지 1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 달여 전 조용히 지나간 이 기념일은 2년 연속 전 세계에 울려 퍼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공식 인정과 대조를 이뤄 뒷맛을 더욱 씁쓸하게 한다.
15년 전 한인들이 워싱턴 정가에서 일본의 방해를 뚫고 미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이라는 기념비적 성과를 이뤄낼 무렵 50만 명의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도 1915년 터키(현 튀르키예)의 대학살 사건에 관한 미 의회 결의안을 시도하고 있었다.
위안부 결의안이 미국과 긴밀한 관계인 일본의 저항에 부딪힌 것과 마찬가지로 아르메니아계들의 시도 역시 미국의 중동 안보정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튀르키예의 방해 공작이라는 닮은꼴 장애물에 부딪힌 상태였다.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의 이런 노력은 하원 외교위까지는 인정받았으나, 당시 본회의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본국으로부터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력으로 미 의회 문을 두드리던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동병상련이었던 한인들의 성공 노하우를 배워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아르메니아계가 많이 사는 지역구 정치인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면서 설득해 동의를 얻어내는 풀뿌리 시민운동 방식으로 전환, 결국 2019년 말 미 하원과 상원에서 차례로 터키의 집단학살 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의 결의안 채택을 끌어냈다.
결정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처음으로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을 '제노사이드'(인종청소)로 공식 선언하고 올해 4월에도 같은 입장을 되풀이함으로써 아르메니아계의 노력은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반면 훨씬 앞서갔던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는 아직 미국 대통령의 공식 선언까지는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10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위안부 문제는 한국 정부와 한국의 시민사회가 과도하게 미국 내 동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인권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 간 분쟁의 문제로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이라며 그 차이를 설명했다.
김 대표는 "한인들이 인권 문제로 시작했던 처음 내용대로 이 운동을 추진했더라면 15년이 지난 지금 아마도 대통령 선언까지 끌어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물론 미국 대통령이 의회가 인정한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공개 언급하지 못한 데에는 일본의 막강한 로비가 더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지나친 개입이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인 인권 사안이 아닌 국가 간 분쟁이라는 일본 측 주장에 어느 정도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특히 최근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국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지 못하는 바람에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권 이슈로 다시 한번 국제사회에 알릴 기회를 놓쳤다고 김 대표는 아쉬워했다.
따라서 '미국 시민권자'인 한인 동포들의 풀뿌리 시민사회 운동을 한국 정부나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장기적이고 정책적인 관계로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조언이다.
그는 "한인들은 한국 정부가 한국을 위해서 일하라고 보낸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한국 정부는 미국 시민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2세, 3세 한인들의 활약에 주목하고 그 지점과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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