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동남아 항공사 인천~LA 취항 추진…합병 부작용 지적
美당국의 아시아나 합병 승인받으려 설득 중…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 대한항공이 미국 경쟁 당국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020560] 기업결합 심사 승인을 받기 위해 동남아 항공사의 인천∼미국 노선 운항을 추진하고 있다.
제3국의 항공사가 단순 경유가 아닌 인천국제공항과 미국을 오가는 노선을 운항할 경우 결과적으로 국적 항공사의 운항 횟수가 줄어들게 돼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국토교통부와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동남아 지역 몇몇 항공사와 인천∼미국 노선 운항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이 신규 항공사의 인천∼미국 노선 취항을 추진하는 것은 미국 경쟁 당국이 합병 이후 시장 경쟁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체 항공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흡수하면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했던 일부 인천∼미국 노선 운항을 신규 항공사가 아시아나항공을 대신해야 한다는 요구다.
대한항공은 유나이티드항공이나 델타항공 등 미국 국적 항공사에 인천∼미국 주요 노선 운항 확대를 요청했지만, 인천∼로스앤젤레스(LA) 노선의 경우 이들 항공사의 관심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LA 노선은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 심사 당시 경쟁 제한성이 발생할 수 있는 '독점 노선'으로 분류했고, 미국 경쟁 당국도 시정 조치가 필요한 노선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한항공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항공사 등에 인천∼LA 노선에 신규 취항해달라고 설득했고, 이 가운데 베트남 항공사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베트남 항공사가 인천∼LA 노선을 운항하기 위해서는 정부 간 항공회담을 통해 이원권을 배분해야 한다.
이원권이란 항공협정을 체결한 두 국가의 항공사가 자국에서 출발해 서로의 국가를 경유한 뒤 제3국으로 운항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국토부도 대한항공 합병 지원을 위해 항공 협정 체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각국 정부와 항공사 간 최종 합의가 이뤄지면 대한항공은 신규 항공사 진입 계획을 미국 경쟁 당국에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며 "각국 경쟁 당국의 경쟁 제한성 완화 요구에 따라 다수의 국내외 항공사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유럽과 미국 노선 등에 신규 진입할 항공사들과 MOU(업무협약) 체결도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인천공항 일부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도 외항사에 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업계에서는 이처럼 우리나라 항공 시장을 외항사에 내주는 상황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항공 합병 추진의 부작용이라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올해 2월 한국 공정위가 양사의 합병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외항사에 '안방'을 내주는 부작용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는 얘기도 많다.
특히 이원권에 대해서는 '항공 주권'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도 나온다. 항공 수요가 높은 국가들은 자국 항공사 보호를 위해 다른 국가와 이원권 협정을 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항공 협정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협정을 체결한 두 국가에 동일한 권리를 부여한다. 베트남 항공사가 인천에서 제3국으로 운항할 수 있게 되면, 우리나라 항공사도 베트남에서 제3국으로 운항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한국 국적 항공사가 베트남에서 제3국으로의 운항권을 얻더라도 우리나라의 이익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 이원권을 가진다면 한국이 갖는 이점은 없어 보인다"며 "인천에서 미국으로 가는 수요는 많지만, 그만큼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가는 수요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노선의 경우 런던·파리·프랑크푸르트·로마 노선 등에서 외항사들의 운항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대한항공과 국토부는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장거리 노선을 운항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해외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대체 항공사로 외항사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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