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러시아 가스 차단에 500조대 지원금 계획…침체 우려 확산
겨울 가스요금 급등에 대비해 가계·에너지기업에 지원 쏟아붓기로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핵심 가스관을 잠그자 유럽 각국이 겨울철 가스 가격 급등에 대비해 가계와 에너지 기업을 돕기 위해 수백조원 규모의 막대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더 악화하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이 경기후퇴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이미 1년 사이 약 400% 뛰어오른 데 이어 러시아의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 가동 무기한 중단 소식의 여파로 5일(현지시간) 하루에도 약 15% 급등했다.
블룸버그·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유럽 싱크탱크 브뤼헐은 각국 정부 발표와 자료를 취합한 결과 올겨울 에너지 가격 상승에 대비한 유럽 각국의 지원액 규모를 최소 3천790억 유로(약 516조원)로 추산하고, 향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영국은 올겨울 전기요금이 약 178% 치솟을 것이라는 우려에 각 가계에 400파운드(약 63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빈곤층 지원을 늘릴 방침이다.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독일의 경우 지난달 가정용 전기요금이 전년 동기 대비 185% 뛰어오르자 독일 정부는 최소 650억유로(약 88조5천억원) 규모의 가계·기업 지원책을 내놨다.
프랑스는 가정용 전기요금에 상한을 설정하기로 했으며, 이탈리아·네덜란드·스웨덴·스페인·폴란드 등 각국도 유사한 부담 경감 조치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공급을 통제하고 천연가스 도매가격이 고공행진하는 한 이러한 정부 지원은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컨설팅그룹 바사ETT 측은 "도매가격을 잡지 못하면 (각국 정부에) 남아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원금을 주는 것이고,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절약"이라고 진단했다.
각국은 경영 위기에 몰린 에너지 기업들에 대한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 정부는 자국 에너지 기업들에 각각 100억 유로(약 13조6천억원), 2천500억 크로나(약 31조7천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 조치를 발표했다.
영국에서는 전기 도매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급증으로 인해 민간 전력회사 약 30곳이 파산하자 에너지 규제기관이 민간 전력회사가 받을 수 있는 전기요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독일은 자국 최대 에너지기업 유니퍼에 수십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했다. 유니퍼는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호주 에너지기업에서 매년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 최대 12대 분량(10억㎥)을 도입하기로 장기계약했다.
이러한 가운데 독일 등지에서는 올겨울 전력 배급제 시행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비료나 알루미늄 등 에너지 집약산업을 중심으로 생산활동 둔화 등 유럽 경기후퇴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유럽연합(EU) 물가 상승률이 9.1%를 찍은 뒤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번에 0.5%포인트나 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20년 새 최저로 떨어진 상태다.
지난달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제조업·서비스업 경기지표인 S&P 글로벌 합성 구매관리자지수(PMI) 확정치는 7월의 49.9보다 내려간 48.9로, 18개월 새 최저를 기록했다.
독일 코메르츠방크 수석이코노미스트 외르크 크래머는 독일 정부가 최근 내놓은 지원책에 대해 "독일이 가을에 경기후퇴에 진입할 것이란 사실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이체방크의 외환 애널리스트 쉬레야스 고팔은 영국의 국제수지 불균형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단기적인 대규모 재정확장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커지고 투자 심리가 얼어붙을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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