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뚫린 환율에 항공업계 '비명'…수출기업 환율효과도 '옛말'

입력 2022-08-23 11:07
수정 2022-08-23 11:11
천장 뚫린 환율에 항공업계 '비명'…수출기업 환율효과도 '옛말'

원/달러 환율 1,340원대 돌파…항공업계 외화부채 상환 부담 눈덩이

수입비중 큰 철강업계 등 타격…수출 경쟁국의 환율도 하락해 실익 없어



(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 이후 처음으로 1,340원대로 치솟으면서 국내 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달러당 2.0원 오른 1,341.8원에 개장한 뒤 장 초반 1,340원대 초중반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 장중 1,330원선과 1,340원선을 연이어 돌파하며 13년 4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국내 기업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수출 측면에서는 고환율로 매출을 늘어나는 점도 있지만, 안 그래도 물가상승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원자재를 비싼 가격에 해외에서 들여와 국내에서 제품을 만드는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 대한항공[003490], 환율 10원 오르면 350억원 손실…재무건전성 악화

우선 치솟는 환율은 항공사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하는 주요 요인이다.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막 회복하기 시작한 항공사들은 고환율에 발목이 다시 잡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달러로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료 등을 지급해야 하는 항공사 입장에서 고환율은 큰 부담이다. 외화 부채 상환 부담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환율 10원 변동 시 약 350억원의 외화평가손익이 발생한다. 1천200원이었던 환율이 1천300원으로 오르면 장부상 3천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아시아나항공[020560]도 환율이 10원 오르면 284억원의 외화환산 손실이 발생한다.

과거에는 환율 상승 시 해외 영업으로 얻는 외화 수익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현재는 국제선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아 외화 수익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고환율 여파로 2분기 항공사의 외화환산손익은 손실로 전환됐다.

고환율이 해외여행에 대한 부담감을 늘려 여행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북미 공장 신·증설 앞둔 배터리 업계 투자비용 부담

통상 환율 상승은 수출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교과서적 공식도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우리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원화 표시 매출액이 늘어나기 마련이지만 현 국면에서는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화 가치 하락은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져 수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현재는 수출 경쟁국인 일본이나 중국의 통화가치도 동반 하락하면서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투자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배터리 업계의 경우 환율 상승에 따른 매출 증대 효과를 누리고 있지만 미국에 대규모 신규 투자를 앞두고 있어 비용 부담이 커졌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삼성SDI[006400], SK온 등 배터리 3사는 북미를 중심으로 배터리 공장의 신·증설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환율 상승으로 기존에 예상했던 투자 규모가 급증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투자 비용 상승을 이유로 미국 애리조나에 1조7천억원을 들여 배터리 단독공장을 짓기로 한 투자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환차익으로 인한 매출 상승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반대급부로 투자비와 인건비가 증가하는 부분이 있다"며 "환율 상승이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수입비중 큰 업계 부담 가중…중소기업, 원부자재 수입가격 상승에 부담

수출보다 수입 비중이 큰 철강업계도 원/달러 환율 급등세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원자재 가격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는 철광석 등 원재료를 수입해 만든 철강 제품을 대부분 국내 제조업체에 공급한다. 내수 의존도는 높은데 원자재는 수입해야 해 환율과 원료 가격 등 외부 요인에 따른 수익성 변동 폭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수출 비중이 40∼50%인 포스코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내 철강업체들이 원화 약세로 인한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수출 확대를 통해 환율 급등세의 부정적 영향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대제철[004020] 관계자는 "철강 원자재 수입 부담을 제품 수출로 상쇄해 헤징(위험 회피)이 가능한 수준"이라며 "환율 변동에 대한 영향은 크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중소기업의 상황은 좀 복합적이다. 환율 급등은 사업 방식에 따라 악재일 수도, 호재일 수도 있다.

전체 중소기업의 약 6분의 1을 차지하는 수출업체로서는 통상 고환율이 반갑기 마련이다. 원화 가치가 하락해 해외에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부자재를 수입해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특히 환율 인상분이 납품단가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 중소기업이 비용 부담을 그대로 떠안게 된다.

이런 이유로 중소기업 업계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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