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여름엔 38℃까지…동토 시베리아 숲 삼킨 산불

입력 2022-08-24 08:02
수정 2022-08-28 17:45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여름엔 38℃까지…동토 시베리아 숲 삼킨 산불

기후변화로 여름철 산불 강도 세져…작년 8월 산불로 서울 141배 소실

눈 일찍 녹고 땅 건조해져 산불 쉽게 확산…"겨울 따뜻해진 느낌"

영구 동토층 녹으면서 매머드 유해 발굴로 생계 잇기도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현장을 취재한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뱌스큐욜[러시아 사하공화국]=연합뉴스) 최수호 특파원 = 동토 시베리아의 침엽수림 '타이가'의 몸집은 압도적이었다.

19일(현지시간) 러시아 북동부 사하(야쿠티야) 공화국의 수도 격인 야쿠츠크에서 서북쪽 고르니로 가는 왕복 2차선 도로 양쪽은 하늘로 기세좋게 뻗은 침엽수가 빈틈없이 빽빽했다.

5시간 넘게 이어진 이런 장관은 고르니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달라졌다.

이곳은 작년 8월 사하 공화국에서 난 잇따른 산불로 가장 많이 피해를 본 지역 중 하나다. 고르니의 뱌스큐욜 마을은 이 산불로 없어질 뻔했다.

야쿠츠크에서 280㎞ 떨어진 인구 703명(296가구)의 이 마을에선 작년 8월 거센 바람을 타고 넘어온 산불이 덮쳐 주택 34채가 소실되는 피해가 났다. 인구 밀도가 낮은 시베리아에서 집 수십 채가 산불로 피해를 보는 일은 매우 드물다.

작년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끈 '시베리아 산불'의 중심지인 셈이다.



불에 탄 나무들은 기둥째 쓰러져 있고 시커멓게 변한 잔가지가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땅 위로 기다란 모양으로 물이 고인 얕은 웅덩이도 자주 나타났다.

지하에 고인 물을 빨아들이던 나무가 산불로 대거 소실되자 마른 땅 위로 물이 조금씩 차오르면서 웅덩이가 됐다.

차를 운전하던 드미트리 필리포프(36) 씨는 "지난해 산불 이후 고르니 지역 곳곳에 이러한 웅덩이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 길을 따라 뱌스큐욜로 향할수록 산불 피해 흔적은 더욱 자주 나타났다.

오후 1시 20분께 뱌스큐욜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새까만 재로 뒤덮인 언덕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산불 발생 전까지만 해도 이 언덕은 산딸기나무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채취한 산딸기를 잼이나 주스로 만들어 먹거나 외지에 내다 팔아 쏠쏠히 수입을 얻기도 했었다.



오래된 목조 주택과 소, 말이 풀을 뜯는 마을 입구에서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니 반듯한 철제 울타리를 두른 깔끔한 1·2층 단독 주택이 모인 곳이 나타났다.

지난해 8월 산불로 민가 34채가 소실됐던 곳으로, 다행히 정부가 피해 주민들에게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줬다.

디아나 표도로바(43) 씨도 작년 8월 산불로 집을 잃었다.

마을 주변 산에서 시뻘건 불길과 함께 연기가 솟아오르자 남편, 7명의 자녀와 함께 마을 밖으로 황급히 대피했다.

기르고 있던 소 8마리와 송아지 7마리도 모두 풀어줬다.

디아나 씨는 "집이 모두 타버려 한동안 다른 마을에 있는 가족 집에서 지냈다"며 "다행히 풀어줬던 소와 송아지는 다시 찾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산불은 이 작은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사하공화국 전체의 산불 피해 면적은 서울의 141배인 850만㏊가 넘는다.

올해도 동토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이상고온과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사하공화국 곳곳은 산불에 신음하고 있다.

5월부터 시작된 산불로 최근까지 북극권인 슬레드니콜름스키 지역을 비롯해 우스트-마이스키 지역 등에 있는 산림 55만8천729㏊가 탔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사하공화국의 여름철 산불 발생 시기가 앞당겨지고 산불 강도 역시 강해지고 있다.

사하공화국에서 발생하는 산불 대부분은 마른벼락 탓이다. 온난화로 인한 건조해진 숲과 마른벼락이 결합하면 불이 더욱 쉽게 붙게 된다.

또 상승한 기온 탓에 겨우내 쌓인 눈이 예전보다 일찍 녹고 봄철 강수량도 적어져 땅이 더 건조해지면서 여름철 산불이 쉽게 확산하는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야쿠츠크의 멜니코프 영구동토층 연구소는 지구 온난화로 최근 10~20년 동안 사하공화국 북극 지역 평균기온이 2도, 중남부 지역 평균기온이 1~1.5도 상승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실제 2020년 6월 20일 사하공화국 북극 지역인 베르호얀스크는 역대 최고 기온인 38도까지 오르기도 했다.

기후변화는 사하공화국을 포함한 시베리아 북쪽 지역의 여름철 산불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유럽연합(EU)이 운영하는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에 따르면 2021년 6∼8월 북극권 지역 산불은 러시아 사하공화국과 추코트카 자치구가 있는 시베리아 북동쪽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산불이 난 지역은 대체로 평균보다 건조해진 토양이 분포하는 곳과 일치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산불 피해가 이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 8월 사하공화국에서 발생한 산불로 막대한 양의 연기가 바람을 타고 3천㎞ 이상 떨어진 북극까지 날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산불이 방출하는 재와 여러 입자는 눈과 얼음을 더욱더 녹기 쉽게 한다.

눈과 얼음 표면에 재와 입자가 쌓이면 표면이 어두워져 더 많은 태양 복사열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산불은 사하공화국 주민들의 생활환경도 변화시켰다.

사하공화국엔 동서를 가르는 4천400㎞ 길이의 레나강이 있다.

레나강을 기준으로 서쪽 지역 주민들은 여름철이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동쪽의 도시에 다녀온다. 겨울철에 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떨어져 강이 꽝꽝 얼면 직접 차를 몰고 강을 건넌다.

뱌스큐욜 주민들도 겨울에 야쿠츠크와 맞닿은 레나강의 '얼음 도로' 2곳으로 건너편 지역 도시를 찾는다.

시속 60㎞ 속도로 차를 몰면 35∼45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젠 겨울철에 이 얼음 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이 이전보다 줄었다고 했다.

뱌스큐욜 주민 줄루르 구리노브(25) 씨는 "전엔 11월 중순이면 레나강이 충분히 얼어 차로 다닐 수 있었는데 3~4년 전부터는 12월 중순이 돼야 차를 몰 수 있다"고 말했다.

야쿠츠크에 사는 또 다른 주민은 최근 들어 겨울이 따뜻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작년 겨울에는 영하 55도의 기온이 12월 말부터 이듬해 2월 중순까지 두달간이었다"며 "하지만 올해는 1월에 2주 동안만 영하 53도였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사하공화국 북쪽 지역에선 고대 멸종동물인 매머드 상아를 발굴하는 새로운 생계 수단이 생겨났다.

영토의 40%가량이 북극권에 속하는 사하공화국은 러시아에서 매머드 유해가 가장 많이 묻힌 곳이다.

주민들이 발굴한 매머드 유해는 지난해 160t 정도로 상아는 주로 중국으로 수출된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땅속에 갇혔던 각종 가스가 배출돼 토지 형질이 변하고, 안전 문제도 발생할 수 있어 원주민들이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사하공화국에서 향후 어떠한 유형의 결과가 추가로 발생할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경고음은 계속해서 들린다.

최근 북동연방대학교 북부지역 기후·생태계 연구소는 향후 사하공화국의 기온 상승은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만큼 억제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발표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2100년까지 사하공화국 연평균 기온이 2.9∼7.9도, 사하공화국 북극권 연평균 기온은 4∼7도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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