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 입국 막자" vs "연좌제 안돼"… 갈라진 유럽 여론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인에 대한 비자 발급 중단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럽 내 여론이 양분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U 내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관광비자를 내주지 않는 국가들이 늘고 있지만, 이런 조치가 선량한 러시아 국민에까지 '연좌제'를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보도에 따르면 EU 순회의장국을 맡은 체코는 이달 30일 자국에서 열리는 EU 외교장관 회의에서 러시아인에 대한 비자발급 중단 문제를 공식 의제로 제안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서방 국가를 향해 러시아인에 대한 전면적인 여행금지를 촉구한 것을 전후로 발트 3국 등 러시아 접경 국가들 중심으로 비자발급 중단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이미 발급된 비자도 취소하며 러시아인의 입국을 막고 나섰고, 핀란드는 러시아인에 대한 관광비자 발급을 현재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독일과 같은 나라들은 여행 전면금지 조치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해온 러시아인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
앞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건 푸틴의 전쟁이지 러시아인의 것이 아니다"라며 "러시아 정권에 반대하며 모국을 떠나오는 러시아인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며 여행 전면금지 방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EU로선 이 사안을 놓고 회원국 간 의견 불일치가 드러나는 것이 부담인 만큼, 어떻게든 합의안을 도출해야만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NYT는 전했다.
NYT는 이 논란에 대해 "푸틴이 일으킨 전쟁의 책임을 물어 러시아인들을 돌려보내는 것이 과연 의도한 효과를 가져올지, 아니면 러시아인을 적대시하고 소외하는 조치가 도리어 '서방이 러시아를 파괴하려고 한다'는 푸틴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을지 따져봐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라고 분석했다.
국제관계 분석가인 벤저민 탤리스는 "입국 금지 조치는 단순히 러시아인들이 유럽에서 휴가를 보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넘어 유럽인들에게 도덕적, 전략적 목적을 위해 힘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개방성을 중시해온 EU가 이런 조치를 하는 것 자체가 결단력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가 될 것"이라고 찬성론을 폈다.
반면 미국과 유엔에서 프랑스 대사로 활동했던 제라르 아로는 "연좌제는 국제법에 반한다"며 "(비자 발급 중단에) 현실적이고 성취 가능한 목적도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반대론자 사이에선 EU가 러시아에 대해 마련한 제재안부터 제대로 시행해야 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지금까지 발표된 제재안 중 중요한 것들이 연기되거나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예외 적용도 많아 러시아의 군비 마련에 차질을 준다는 목표 달성에 한참 모자란 상황이라는 것이다.
러시아 내 반체제 인사들 사이에서도 서방의 비자 발급 중단 논의에 대한 반발이 감지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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