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제보] 정부 규제 비웃는 생활숙박시설 '꼼수' 분양
분양업자 '위탁사 끼고 실거주 가능하다'며 소비자 현혹
허위과장·편법 영업에 계약자 피해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주거시설로 사용할 수 없는 생활숙박시설이 여전히 주거용으로 편법 분양되고 있어 계약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생활숙박시설을 주택처럼 분양하고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관련 법령을 개정했지만, 분양업자들은 정부 대책을 비웃듯 꼼수에 꼼수를 쓰며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고 있다.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구하고 있던 A씨는 최근 경기도에서 분양 중인 한 생활숙박시설을 계약했다.
생활숙박시설은 일정 기간을 한곳에 머물러야 하는 외국인이나 지방 발령자 등을 위해 2012년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도입한 것이다. 손님이 자고 머물 수 있도록 취사시설을 갖춘 장기투숙형 시설로,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반드시 영업 신고를 하고 숙박업 용도로만 써야 한다.
하지만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중간에 위탁운영사를 끼면 분양받은 소유자가 직접 들어와 살아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며 A씨를 현혹했다.
'분양받은 소유자가 이 건물 위탁운영사인 B사와 운영 위탁계약을 체결한 뒤 투숙객으로서 B사와 장기투숙 계약을 하고 들어와 살면 된다'는 것이었다.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소유자인 동시에 투숙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5년이건 10년이건 계속 살 수 있다"며 "현재 계약자의 70%가량이 실거주 목적의 구매자"라고 했다.
분양대행사 측의 말을 믿은 A씨는 분양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까지 지불했다.
하지만 나중에 위탁운영사 측으로부터 들은 말은 이와 달랐다.
이 건물 위탁운영사인 B사는 A씨의 문의에 "소유자가 거주하는 기간에는 위탁운영사가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없다"면서 "소유자가 1년 넘게 장기 투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분양사무소 측 말만 믿고 덜컥 계약한 A씨는 이미 계약금을 낸 상태여서 계약을 철회하거나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분양업자의 허위 과장 광고로 나처럼 피해를 보는 계약자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하면서 "생활숙박시설 관련 법령이 계속 바뀌고 이를 피하려는 편법이 생겨나면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인 것 같다"고 했다.
생활숙박시설은 법적으로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전매 제한 규제, 대출 규제 등 주택에 적용되는 고강도 규제를 받지 않으며,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도 아니다.
이처럼 각종 규제를 피한 생활숙박시설이 사실상 주택처럼 홍보·분양되고 불법 전용되자 정부는 지난해 건축물분양법 시행령을 개정, 생활숙박시설 분양 계약 시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숙박업 신고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한 바 있다.
숙박업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며, 주거용으로 사용할 경우 시가표준액의 1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이처럼 규제가 강화되자 분양업자들 사이에 또 다른 편법과 꼼수가 등장하면서 A씨와 같은 피해 사례도 생겨난 것이다.
건설교통부는 이미 A씨와 비슷한 사례들을 접수하고 실태 파악에 나섰다.
건교부 관계자는 "한쪽 구멍을 막았더니 다른 쪽 구멍이 터진 셈"이라며 "위탁운영사를 중간에 끼고 생활숙박시설을 사실상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불법용도변경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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