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바다의 습격…모자반 악취 뒤덮인 플로리다 해변

입력 2022-08-23 08:02
수정 2022-08-28 17:48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바다의 습격…모자반 악취 뒤덮인 플로리다 해변

올 6월 역대 최고치 기록…정점 지났는데도 자극적인 악취 속 키웨스트 신음

2011년 처음 대규모 출현…아프리카∼플로리다 8천850㎞ 모자반 벨트 관측

기후변화와 산림파괴 등 원인 추정…"이미 통제 불가한 뉴노멀"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현장을 취재한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키웨스트·세인트피터즈버그[미 플로리다]=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본토 최남단 플로리다주 키웨스트는 코를 찌르는 썩은 달걀 냄새가 진동했다.

연청색의 하늘과 청록색의 바다가 수평선에서 만나 선대칭을 이루며 끝없이 펼쳐지는 열대 대서양의 휴양지에서 더운 바람을 타고 퍼지는 이 기이한 냄새의 출처는 근처 사우스 비치였다.

'쿠바까지 90마일'(144㎞)이라고 쓰인 최남단 표지석을 지나 한 블록 뒤로 이동하니 50여m 떨어진 이 해변에서 짙은 암갈색의 '두엄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따가울 정도의 햇볕과 32도의 기온 속에 시커멓게 변해가고 있는 것은 해초인 모자반이었다. 해변에서 썩어가는 모자반을 치우기 위해 한 곳에 쌓아놓은 것이다.



"바다를 보며 시원한 음료수를 마실 생각이었는데 물이 너무 더럽고 냄새가 심해 포기했어요."

사우스비치 옆 카페에서 만난 관광객 케이트 로드리게스 씨는 악취에 얼굴을 찌푸리며 발길을 돌렸다.

야자수를 배경으로 하얀 백사장과 투명한 바닷물을 기대했지만 갈색 모자반이 물결에 출렁거렸다. 물살이 세지 않은 곳은 썩은 모자반이 모여 흡사 하수구 찌꺼기 같았다.

이 지역 언론인 린다 그리스트 커닝햄 씨는 "9일엔 썩은 모자반이 허벅지 높이까지 쌓였는데 청소를 했다"며 "당시에는 한 번 들이쉬면 기절할 것 같은 냄새를 해변 열블록 밖에서도 맡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날은 해변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악취가 코끝을 맴돌았다.

최남단 표지석 오른쪽 해변을 따라가며 들른 힉스 메모리얼 비치나 레스트, 스매더스 등 키웨스트의 다른 해변도 다를 바 없었다. 모자반을 치운 해변은 그나마 나았지만 방치된 곳에서는 악취를 풍기면서 썩어가고 있었다.

키웨스트 남동쪽의 해변을 향해 한 시간 넘게 걷는 동안에도 냄새가 익숙해지기는커녕 오래 맡을수록 속이 메스꺼워졌다.

이 악취의 성분은 독성 물질인 황화수소다. 그나마 해변은 바람이 부는 트인 공간이고 모자반을 주기적으로 치운 덕분에 농도가 위험 수위까지 높아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모자반 유입이 한창인 6월쯤엔 악취로 일상은 물론 심신의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유엔환경계획(UNEP)의 '모자반 백서'엔 카리브해 주변 세인트루시아에서 모자반이 유입된 이후 주민, 관광객의 호흡기 문제 발생률이 더 높아졌다는 보고가 있었다.



모자반 악취는 이날 오전 마이애미에서 1번 국도를 탄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이미 엄습했다.

161㎞ 길이의 1번 국도는 내륙에서 키웨스트까지 이어지면서 수백 개의 섬을 연결한다. 비치보이스의 히트곡 '코코모' 가사에도 등장하는 키라고부터 키웨스트까지 뻗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해변 드라이브 코스다.

하지만 이 훌륭한 도로도 악취를 내뿜는 모자반의 습격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1번 국도를 30여분 달려 다다른 이슬라모라다의 고급 리조트 해변에서도 쓰레기와 뒤엉킨 모자반이 바닷물에 뜬 채 부패하고 있었다.

바다에서 모자반과 함께 수영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슬라모라다를 떠나 '세븐 마일 브리지'를 지날 때는 양쪽 바다 위에 긴 띠를 형성하면서 이동하는 모자반을 볼 수 있었다. 이 다리를 건너 도착한 바히아 혼다 비치에선 모자반이 다른 해초와 뒤엉켜 무릎 높이로 쌓여 썩고 있었다.



이 다리 밑은 투명한 열대 바다가 펼쳐지는 장면이 유명해 많은 관광객과 주민들이 찾는 곳이었다.

애틀랜타에서 휴가 온 제이크 말리 씨는 "해변이 아름답다고 해서 왔는데 물이 너무 더럽고 역겨워 몸을 담그고 싶지 않다"며 "실망스러워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0년전 쯤부터 키웨스트의 해변을 뒤덮은 모자반은 어디서 왔을까.

이 모자반은 이른바 '대(大)대서양 모자반 벨트(GASB)'의 서쪽 끝자락에 해당한다.

GASB는 아프리카 서부 해안부터 대서양을 거쳐 카리브해와 플로리다 남부까지 이어지는 긴 띠다. 이 벨트는 절정기 6월에는 최대 8천850㎞ 길이를 이루기도 한다.

이 모자반 벨트가 조류와 바람을 따라 이동하다가 미국 최남단인 플로리다 키웨스트의 해변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애초 모자반은 북대서양의 조해(藻海·sargasso sea)에 서식한다.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가 돼 멀리 떨어진 바다 위에 정상적인 양이 있을 때는 '바다의 열대 우림'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이상 기후로 2009년 또는 2010년에 조해 모자반의 씨앗이 열대 대서양으로 유입됐는데 기후변화가 초래한 최적의 환경을 만나면서 폭발적으로 확산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배경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아마존 열대우림 강우 증가와 아마존 지역 산림 파괴 등이 지목된다. 열대우림이 파괴된 상태에서 기상이변으로 홍수가 계속되면서 바다로 유입된 토양의 영양분이 모자반 성장에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플로리다애틀랜틱대 하버브랜치 해양학연구소의 브라이언 러포인트 연구교수는 "기후변화로 아마존 등에서 큰 홍수가 거의 10년 연속 났다"며 "폭우와 범람에 산림파괴, 농업용 비료 사용 등 인간의 활동이 겹쳐 바다로 유입된 질소의 양이 매우 증가해 모자반이 대규모로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매년 관측되는 모자반의 규모는 추세적으로는 더 악화하고 있다.



남플로리다대 광학해양학 연구소가 인공위성 분석을 통해 추정한 열대 대서양과 카리브해, 멕시코만 등의 전체 모자반의 양은 2018년 6월 2천40만t으로 역대 최고였는데 올해 6월 2천420만t으로 새 기록이 수립됐다.

이 연구소 소장인 촨민 후 교수는 모자반 추정치를 나타낸 그래프가 우상향하는 것을 가리키면서 "이 부분을 보면 좀 무섭다"고 말했다.

모자반 문제는 이미 통제 불가능한 뉴노멀(새로운 정상)이란 체념도 나온다.

후 교수는 "비료 사용을 줄여 영양분 유입을 감축한다고 해도 현재 상황으로 볼 때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모자반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 내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모자반은 관광업이 주력인 이 지역의 경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키 섬 지역을 담당하는 먼로 카운티의 2020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0명 중 1명은 모자반 탓에 휴가지 변경 또는 휴가 취소를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해변에 쌓인 모자반의 양이 1%가 증가할 때마다 관광 수요가 0.09%가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카리브해 지역은 모자반 피해가 더 심각하다.

UNEP에 따르면 칸쿤 등 유명 관광지가 있는 멕시코는 모자반이 최대 규모로 관측된 2018년 1분기에 관광 수요가 35%가 감소했다. 이 최대 기록은 올해 깨졌다.

모자반 제거 비용도 추가 피해다.

2018년 카리브해 지역에서 모자반 청소에 1억9천만 달러(2천538억원)가 들었다는 추정치도 있다.

지나치게 많은 모자반은 생태계도 파괴한다.

촨민 후 남플로리다대 교수는 "거대한 이불 같은 모자반이 해수면을 뒤덮으면 다른 해초나 물고기가 질식하게 된다"며 "죽은 모자반이 물속에서 부패할 때 박테리아가 산소를 사용해 이곳은 결국 생물이 살지 못하는 '데드 존'(dead zone)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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