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30년] ③ 47배 급성장해 최대 교역상대로…앞으로는
가공무역 고리 완벽 상호보완 → 협력·경합 섞인 복합관계로 전환
높은 대중 의존도 해소·中 내수시장 열세 극복 과제…미중 전략경쟁 도전도
(상하이·서울=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박상돈 기자 =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지난 5월부터 3개월 연속 적자다. 석 달 연속 적자는 1992년 8∼10월 이후 30년 만이다.
전문가들은 수교 원년인 1992년 이래 처음 나타난 연속적인 대중 무역적자가 양국 간 경제협력 질서, 나아가 한국의 대외무역 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대규모 무역흑자 시대는 구조적으로 끝나가"
1992년 64억 달러이던 대중 교역은 2021년 3천억 달러가 넘어 47배로 급성장했다. 지난해 중국은 우리나라의 1위 교역 대상국(24%)이다. 특히 한 해 무역흑자의 80%가 중국과의 무역에서 나왔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무역적자가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대규모 대중 무역흑자 시대는 구조적으로 끝나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의 대규모 대중 무역흑자는 한국이 경쟁 우위를 지닌 중간재를 중국에 공급하고, '세계의 공장' 중국이 이를 갖고 만든 제품을 세계에 되파는 구조를 바탕으로 이뤄졌는데 가공무역을 핵심으로 한 한중 무역구조에 변화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후이저우 휴대전화 공장은 한중 협력 모델의 발전과 쇠퇴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삼성은 1992년 중국 시대를 상징하는 후이저우 공장을 세웠다. 절정일 때 삼성 전체 휴대전화의 17%가 여기서 만들어졌다. 한국산 디스플레이, 배터리, 반도체 등 많은 부품이 후이저우 공장으로 수출됐다.
그러나 현지 시장 부진과 인건비 상승 등에 삼성전자는 2019년 이 공장을 닫았고 그 후론 중국에서 휴대전화를 만들지 않는다. 삼성의 스마트폰 해외 생산 거점은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더 싼 베트남으로 이전됐다.
지 연구위원은 "중국을 저임금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모델은 한국의 대중 무역흑자가 정점이던 2013년(628억 달러) 이후 빠르게 해소됐다"며 "이는 중국의 산업 고도화 추진과 한국의 대체 투자지 선택이 결합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중국제조 2025' 등 강력한 산업 현대화 정책을 추진한 중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해 한국의 기술 우위가 약화하고 있다.
이제 중국은 디스플레이, 2차전지, 스마트폰, 전기차, 정보통신기술(ICT) 제품 등에서 각 업계 선두권 제조업체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체 BOE는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 배터리 업체 CATL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과 세계 시장에서 각축한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도 중국이 자급률을 빠르게 높여나가고 있어 반도체 시장에서 한중이 본격 경쟁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는 '한중수교 30주년 무역구조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국은 산업 고도화 전략을 통해 제조 강국이 됐고, 세계 주요 시장에서도 한중 수출 경쟁이 심화했다"며 "반도체·석유화학 등 특정 중간재 품목에 편중된 구조에서 탈피해 소비재 등 최종재 수출 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중국만 가면 힘 못 쓰는 삼성폰·현대차
한국 기업이 거대한 중국 내수 시장 공략에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중국이 '쌍순환'을 기치로 내걸고 내수 중심 경제 구조로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의 대중 수출품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80%를 넘는다.
'한국 기업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13년까지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중국 시장 점유율 20%대로 1위였다. 그러나 고가 시장에서는 애플 아이폰에, 중·저가 시장에서는 '가성비'를 앞세운 샤오미·오포·비보 등 중국 기업에 밀려 최근 수년간 시장 점유율이 0%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사정도 비슷하다.
중국 전기차 전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냉혹한 평가 속에서 2016년 7.35%까지 올랐던 현대·기아차 양사 합계 시장 점유율은 2021년 1.7%까지 추락했다.
소비재 중 가장 성공한 화장품도 최근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중국 사업 의존도가 높던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 대형 기업의 실적 부진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소비재 시장에서 한국산 점유율은 3%에 그쳐 아세안(15.2%), 미국(10.5%), 독일(10.1%) 등 상위권 국가와 큰 격차를 보였다.
◇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도전에 직면
한중 교역의 가파른 성장의 이면에는 한국의 높은 중국 의존도가 자리한다. 이처럼 높은 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도전에 직면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고 한국 등에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칩4) 참여를 제안하고 있다. 중국 견제를 위한 구상들이다.
이에 맞서 중국은 이미 한국에 노골적인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가 미국의 반대로 자사 D램 절반을 만드는 중국 공장에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들여놓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중국과 관계가 날로 복잡미묘해지면서 최근 한국에서 '탈중국 담론'이 강하게 형성되는 모습도 보인다.
시장 대변화 중요성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대중 의존도를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거대한 중국 내수 시장은 향후에도 우리 기업에 계속 큰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에서 균형 있는 대중 접근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한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중국경제관측연구소장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철저히 비즈니스를 잘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사막에서 장사하는데 열악한 환경을 탓하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며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나타난 지정학적 이슈를 잘 관리하면서도 중국 시장의 변화 속에서 새 변화를 잘 보고 우리의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30년의 관성에서 벗어나 보다 큰 국제적 시야에서 한중 경제 관계를 정밀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 연구위원은 "한중 경제협력 이슈가 이제는 양자 관계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졌고 한중 대화 따로, 한미 대화 따로라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지정학의 시대를 맞아 양자 관계를 넘어서는 한중 관계의 새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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