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비가 안온다"…美미시시피 옥토도 '가뭄 흉년'

입력 2022-08-12 08:02
수정 2022-08-12 09:57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비가 안온다"…美미시시피 옥토도 '가뭄 흉년'

수확 앞둔 콩은 성장 늦어 발목 높이…잡초 줄기 꺾자 과자처럼 '뚝'



(마크스[美 미시시피]=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미시시피 삼각주를 가기 위해 테네시주(州) 멤피스 국제공항에 내리면 일단 차로 14번 도로를 달려야 한다.

이어 미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61번 고속도로를 탄 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비로소 길이 320㎞, 최대폭 140㎞인 광활한 미시시피 삼각주가 펼쳐진다.

지평선 아래 고속도로 좌우 풍경은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듯한 숨 막히는 녹색의 세계다.

미시시피강과 야주강이 만든 비옥한 퇴적토에 최신 기술로 무장한 농가들이 재배하는 각종 농산물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하늘과 맞닿은 곳까지 이어지는 비현실적인 녹색을 보니 '미시시피 삼각주도 기후변화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미국의 자본과 기술력이 더해졌으니 기후변화 위기를 피해 나갈 방법을 찾아낸 것 아니겠느냐는 근거 없는 희망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미시시피 삼각주의 농촌에 들어서는 순간 이 같은 기대는 뒤집혔다. 이례적으로 건조하고 더운 여름에 시달리는 현지 농부들의 탄식 때문이었다.



미시시피 삼각주 북부의 소도시 마크스에서 평생을 산 존 맥니스(72)씨는 8일(현지시간)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자신의 콩밭 앞에 섰다.

콩은 미시시피의 상징과도 같은 목화를 제치고 가장 많이 재배되는 농산물이다. 지난해 미시시피주에서는 3천 개의 농가가 콩 농사를 지어 14억9천만 달러(약 1조9천5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옥수수 농사를 짓는 농가는 절반 수준인 1천400여 개 정도였고, 수익도 역시 7억4천800만 달러(약 9천800억 원)로 절반이었다. 목화는 3위 작물이다.

비교적 손이 많이 들어가는 목화나 옥수수와 달리 콩은 물만 주면 120일 만에 수확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한다.

문제는 기후가 바뀌어 미시시피가 이례적인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쯤 이만큼은 자라야 해."

맥니스 씨는 정강이 높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콩 옆에서 자신의 허리 높이로 손을 뻗었다.



90일 전에 씨를 심었고, 이제 수확까지 약 30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콩 줄기가 최소한 허리 높이까지는 솟았어야 정상이라는 것이다.

원인은 가뭄이었다.

맥니스 씨는 "올해 이 동네 강수량은 6인치(약 15.2cm)나 부족하다"고 했다.

목화의 작황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부터 맥니스 씨와 함께 자랐다는 여자친구 테레사 씨는 "한여름이 됐는데도 목화가 이정도밖에 자라지 못한 적은 없었다"고 혀를 찼다.

초여름에 목화꽃이 피고 떨어진 뒤 가을이면 꼬투리에서 팝콘처럼 터져 나온 목화 면을 따는 게 평생을 농장에서 자란 테레사 씨가 체득한 자연의 법칙이다.

현재 상태라면 이 법칙은 올해 어긋날 수도 있다. 물 부족 탓에 올해 주변 밭에서는 꽃이 핀 목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늦었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펌프로 지하수를 끌어올려 밭에 물을 뿌리면 된다.

다만 비용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대기업이나 대형 농장은 광활한 밭에 물을 댈 때 '회전식 관수기'라는 대형 기기를 대여하는 업체와 계약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최장 500m에 달하는 이 기기를 한번 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수만 달러(수천만 원)라고 한다.



이 때문에 기업화되지 않은 소규모 농가는 펌프로 지하수를 끌어올려 자체적으로 물을 준다.

소규모라고 하더라도 미국 농가의 재배면적 자체가 워낙 큰 단위인 만큼 이 비용도 만만치 않다.

맥니스 씨 농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농사를 짓는 데니스 바운즈(56)씨는 관개 작업에 돈을 쓰는 것보다 비가 내리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바운즈 씨는 "비다운 비가 내린 게 벌써 한 달도 넘었다"고 말했다.

지난주에 살짝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농부의 갈증을 해소하기엔 턱도 없었다.



그래도 그가 비를 기다리기로 한 것은 남들만큼 절박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수년 전 경찰에서 은퇴한 뒤 연금으로 생활하는 바운즈 씨는 부친이 소유한 땅에서 가족이 먹을 것과 지역사회에 판매할 분량 정도만 재배하는 소규모 농업에 만족했다.

바운즈 씨가 올해 6에이커(약 7천평) 넓이의 밭에 심은 농산물은 재배기간이 90일로 일반 콩보다 더 짧은 제비콩이었다.

수확까지 30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맥니스씨 밭의 콩보다 훨씬 발육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높이가 발목 정도에 그치는 콩이 대부분이었다.

바운즈 씨는 밭에 자란 잡초 하나를 꺾어 보였다.

잡초는 메마른 밭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예상은 착각이었다.

가뭄에 시달린 잡초의 줄기는 막대 과자처럼 뚝 부러졌다.



밭에 서서 대화만 했을 뿐인데 10분도 지나지 않아 얼굴이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야외에서 일하는 미시시피 농부들이 기후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현상은 갈수록 뜨거워지는 여름 날씨다.

미국 환경청(EPA)에 따르면 현재 미시시피에서 최고온도가 화씨 95도(섭씨 35도) 이상을 기록하는 날은 1년에 15일 정도이지만, 70년 안에 30~60일로 늘어날 전망이다.

물이 충분하다는 전제 아래 더운 날씨는 식물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가뭄 속 고온은 농사에 악조건이다.

특히 미시시피 농산물 중 두 번째로 많이 재배되는 옥수수가 콩이나 목화보다 더위에 취약해 농부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더위는 농업뿐 아니라 축산업에도 도움이 될 리 없다. 미시시피에서 많이 사육되는 닭은 온도 관리에 실패하면 무더기 폐사할 수도 있다.

"어릴 적엔 에어컨이 있는 집이 드물었으니 여름이 되면 모두 창문을 열어놓고 잤어요. 모기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래도 한밤중에는 온도가 좀 내려가니까 나름대로 잠을 잘 수 있었어요. 그런데 요새 여름밤에 에어컨 없이 창문을 열고 잔다면 다음 날 아침 응급차가 출동할 겁니다"

"미국 최남단인 미시시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아무래도 이런 더위에도 익숙하지 않으냐"라고 바운즈 씨에게 던진 질문이 눈치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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