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식민지 아니었다"…다시 쓰는 홍콩 역사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영국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식민지는 아니었다."
홍콩이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150여년간 영국의 식민지였고, 거기서 벗어난 것을 매년 7월 1일 기념한 지 올해로 25년이 됐는데 갑자기 "홍콩은 식민지였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위안부는 없었다',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는 일본 우익의 생떼부터 '제대는 했지만 입대한 적은 없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항간의 우스갯소리까지 떠오른다.
홍콩 교육부는 지난 2일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홍콩이 영국에 의해 점령됐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홍콩의 상태를 설명할 때 '식민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1842년 이래 영국이 홍콩에서 '식민통치'를 했지만 홍콩의 주권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라며 "중국은 1997년 7월 1일부로 홍콩의 주권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 주권 행사를 재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언제나 홍콩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영국이 과거 무력으로 청나라가 홍콩의 지위와 관련한 3건의 조약에 서명하도록 강제했기 때문에 해당 조약은 국제법상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렇기에 1997년 7월 1일 중국과 영국이 거행한 의식은 '주권 이양'이 아니라 '정권 이양'을 의미한 것이라고 밝혔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을 지낸 크리스 패튼 옥스퍼드대 총장은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홍콩 당국의 입장에 대해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총독은 식민지에서 모든 통치권을 가진 행정관리로, 식민 지배국에서 임명한다.
패튼 총장은 지난 6월 홍콩 총독으로 재임했던 시간을 기록한 '홍콩 일기'를 출간하면서 "이 책이 내가 (홍콩에) 존재했고 내가 상상 속 가공의 인물이 아님을 증명한다"며 "과거 중국 황제와 독재자들이 했듯 학자들을 묻어버릴 수는 있다. 그러나 역사를 묻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 책은 홍콩에서 쉽게 살 수 없다.
홍콩프리프레스(HKFP)는 지난달 말 현재 최소 3곳의 홍콩 주요 서점 체인이 '홍콩 일기' 판매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중국 어린 세대에게 1989년 6월 4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민주화 시위는 낯설다.
중국 당국이 시위를 유혈 진압한 이후 해당 사건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한 탓이다.
이와 달리 홍콩에서는 시위 이듬해부터 30여년간 '희생자들을 잊지 말자'는 외침 속에 추모 행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 홍콩에서도 톈안먼 시위는 지워지고 있다.
국가보안법 시행과 함께 2020년을 마지막으로 톈안먼 시위 추모 촛불 집회가 불허됐다. 촛불 집회를 주최해온 단체는 당국의 압박 속에 지난해 해산했고, 그들이 운영해온 톈안먼 민주화 시위 기념관과 30여년 축적해온 온라인 아카이브도 문을 닫았다.
홍콩의 여러 대학에 세워졌던 톈안먼 시위 기념물들은 철거됐고, 공공도서관에서는 관련 서적이 치워졌다.
홍콩 민주 진영은 "이대로 가면 홍콩에서도 다음 세대는 톈안먼 민주화 시위에 대해 알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홍콩에서 지난달 한 주제의 세미나가 동시다발적으로 60회 이상 열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월 1일 홍콩 주권 반환(홍콩 정부는 '주권 행사 재개'라고 주장하는) 25주년 기념식에서 한 연설 내용을 곱씹는 '시진핑 주석 중요 발언' 학습 세미나다.
7월 2일부터 25일까지 20여일간 해당 주제의 세미나가 최소 61회 열렸다고 HKFP가 집계했다.
홍콩에서 동일한 주제의 세미나가 이처럼 단기간에 몰아치듯 열린 것은 처음이다.
또한 홍콩에서 시 주석의 발언을 학습하는 행사가 이처럼 떠들썩하게 열린 것도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 등 중국 정부 조직이 조용히 진행하는 폐쇄적인 행사가 가끔 열리는 정도였고, 그마저도 일반 대중은 거의 모르게 지나갔다.
그러나 2019년 반정부 시위 이후 중국의 '홍콩 손보기'가 본격화하면서 급기야 홍콩에서 '시진핑 세미나'가 비 온 뒤 죽순 솟아나듯 열렸다.
한스컴 스미스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는 지난달 이임 고별 연설에서 "홍콩은 사상적 편집증과 집단사고가 아니라 개방성과 투명성을 포용했을 때 성공해왔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중국의 입맛에 맞게 편집된 역사를 배우고, 사회 각계각층은 시 주석의 말씀을 밑줄 쳐 가며 공부하는 홍콩은 성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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