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탓 쿠바의 자랑 '예방중심 무상의료' 붕괴위기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쿠바는 '전 국민 무상 의료체계'를 최대 자랑거리로 삼아왔다. 1959년 쿠바혁명 이후 수립된 쿠바 의료체계의 핵심은 '가족 주치의' 제도다. 쿠바 국민은 모두 주치의가 있다. 주치의는 주민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오전에 동네 의원(콘술토리오)에서 외래 진료를 보고 오후엔 간호사와 함께 가정 방문 진료를 한다. 주치의는 주민의 음주·흡연 여부나 만성질환 등 주민의 건강 상태를 관리하고 집중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상위 의료기관으로 보낸다. 의사 한 명이 돌보는 주민은 보통 1천 명 내외다. 치료보다 예방에 중점을 두는 의료체계다.
2000∼2020년 쿠바의 의료비 지출은 다른 중남미 이웃 나라에 비해 높은 수준이었지만, 그 효율성은 다양한 지표로 입증됐다. 의료비 지출 규모는 미국과 비교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었지만, 기대수명은 오히려 미국보다 쿠바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상황이 급변했다. 코로나19로 쿠바의 의료 체계에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고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가 4일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인구 1천100만명인 쿠바에서 4일 현재 코로나19 공식 사망자는 8천529명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초과사망자' 수는 최대 6만2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초과사망자는 코로나19가 확산하지 않았을 상황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쿠바의 실제 코로나19 사망자와 초과사망자 수치가 7배나 차이 나는 이유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쿠바의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부정확할 수 있고, 보건당국이 사망자 수를 축소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쿠바의 10만명당 초과사망자 수는 550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 세계 상위 20위 안에 드는 수치다. 미주대륙 전체 코로나19 초과 사망자 수는 10만 명당 368명 수준이다.
코로나19 초기까지만 해도 쿠바의 예방 중심 의료체계를 각국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실력이 뛰어난 의료진을 풍부하게 보유한 쿠바가 이웃 나라에 의료진을 파견하기도 했다.
상황이 달라진 원인으로 다양한 요소가 지목된다.
먼저 피할 수 없는 원인으로는 고령화가 꼽힌다. 쿠바 전체 인구의 20%는 60세 이상 고령층이다. 코로나19에 더 취약한 인구가 늘어난 셈이다.
피할 수 있었던 다른 요소들도 적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의료비 예산 부족 상황이 가중됐다. 의료용 필수품 공급도 수월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병원의 부담이 가중됐다.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산소나, 의료진을 위한 개인보호장비 등이 태부족 상태에 빠졌다.
쿠바는 자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 접종률을 현재 89%까지 끌어올린 나라다. 그러나 문제는 접종 속도였다. 쿠바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2021년 8월, 델타 변이 확산 당시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다. 당시엔 쿠바의 백신 접종률이 35%에 불과했다. 영국은 64%, 미국은 54%가 백신 접종을 마쳤을 때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쿠바인들이 오랜 기간 알고 있었지만, 당국이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 팬데믹 탓에 부각됐다. 이 나라의 의료체계가 과거의 영광을 잃고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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