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연구원 "횡단보도 건너는 사람 있어도 운전자 46% 과속통과"
"보행자가 횡단보도 대기 중이어도 운전자 63%가 감속 안해"
(서울=연합뉴스) 권희원 기자 =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것을 보고도 차량 운전자의 46%는 감속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생활권 도로 비신호 횡단보도를 통과하는 차량 1천431대의 속도 변화를 현장 조사해 운전자의 운전 행태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4일 밝혔다.
교통연구원은 '보행자 없음', '횡단자 보행로 대기', '횡단자 보행로 아래 대기', '보행자 횡단 시작', '보행자 반대방향 횡단 시작' 등 5가지 보행 상황에 따른 차량의 속도 변화를 조사했다.
그 결과 비신호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길을 건너기 위해 대기 중인 상황에서도 운전자의 약 63%는 횡단보도를 과속으로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 중인 보행자가 없는 상황에서 과속으로 횡단보도를 통과한 차량은 전체 316대 중 약 59%로 조사됐다.
교통연구원은 대기 중인 보행자의 존재만으로는 운전자의 차량 감속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차량이 횡단보도를 과속으로 통과할 때 보행자의 급진입시 즉각 대처하기 힘들어 인명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행자가 비신호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 상황에서도 과속으로 통과한 차량의 비율이 45.8%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행자가 보행로 아래서 대기한 경우에 과속으로 통과한 차량은 48.2%였다.
보행자의 횡단이 시작된 상황에서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한 차량의 비율은 0.4%로 보행자가 횡단을 위해 대기 중인 상황(일시정지 0.4%)과 비슷했다.
보행자가 횡단을 시작한 경우에는 과속 통과 차량의 비율이 줄었지만, 일시정지하는 차량의 비율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교통연구원은 운전자들이 보행자와의 충돌이 예상되는 경우에만 횡단보도를 저속으로 통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차량 진행방향 쪽 보도에서 보행자가 횡단을 시작한 경우 일시정지하거나 저속통과한 차량은 4.4% 수준이었지만, 차량 진행방향 반대 측 보도에서 횡단을 시작한 경우에 일시정지·저속통과한 차량은 17.5%까지 늘었기 때문이다. 차량 진행방향 쪽 보행자가 횡단을 시작하면 차량이 횡단보도에 도달할 때쯤엔 보행자가 이미 지나간 상태가 돼 충돌 위험이 높지 않지만, 반대편 보행자가 횡단을 시작하면 차량이 횡단보도에 진입할 때 충돌할 위험이 커진다고 본다는 의미다.
아울러 교통연구원은 전국 운전자 730명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차량 진행방향 쪽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대기하고 있는 경우 운전자의 67.7%가 정차하지 않고 통과한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56.9%가 '보행자가 횡단을 시작하지 않았거나 차량 통과가 보행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서행과 횡단보도 예고를 위해 설치된 노면 표시를 모두 숙지한 운전자는 6.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행자 7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식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0.9%가 '접근하는 차량이 없거나 접근 차량이 지나간 후 횡단을 시작한다'고 답변했다. 이 중 67.1%는 그 이유로 '차량이 멈춰 주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응답했다.
조범철 교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최근 보행자 중심의 도로교통법 개정에 맞춰 교통사고 과실 비율 인정 기준도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hee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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