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점 향하는 대만 갈등…미중 전략경쟁 '화약고'
대만 가치 상승 속 '누가 현상변경자인가' 놓고 美中 불신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겨냥해 중국이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강경 대응을 예고하면서 대만 갈등이 점점 임계점을 향하는 양상이다.
이번 갈등의 이면에는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 증대, 점점 커지는 미중간 상호 불신 등이 자리하고 있다.
◇ '현안' 된 중국의 대만 통일…25년전과 달라진 중국 국력과 대만의 가치
중국은 1997년 뉴트 깅그리치 당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이 차이의 배경에는 우선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숨긴 채 힘을 기른다는 의미)에서 대국굴기(大國堀起)로 전환한 중국의 변화가 존재한다.
중국은 건국 이래 시종 '대만은 중국의 미수복 영토'라는 입장이다.
국력 면에서 중국이 대만을 압도하고, 유엔에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중국을 유일하게 대표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 즉 대만이 주권국가로 독립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중국과 대만은 남북한보다 훨씬 자유로운 상호 교류를 해왔다.
그러나 2012년 집권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세우며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을 배제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2016년 집권한 대만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은 독립 지향성을 갈수록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최근 수년간 흔들리고 있었다.
올가을 당대회에서 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할 것으로 보이는 시 주석이 자신을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과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반열에 올릴 업적으로 대만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에다 미중 전략경쟁 요인이 겹쳤다. 양국이 국운을 건 전략경쟁에 접어들면서 대만의 군사·경제적 의미는 커졌다.
중국의 대만 통일은 미국 입장에선 중국과의 태평양 대치선이 대만의 동쪽 해안으로 성큼 다가옴을 뜻한다. 중국 입장에선 서태평양 제해권에서 결정적인 교두보가 마련됨을 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군사안보적 차원뿐만 아니라 미중 기술패권 경쟁 차원에서 대만의 가치가 더해졌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미국이 추구하는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서 핵심 플레이어 중 하나다.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가동하며 동맹국을 규합하고 있는 미국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를 용인할 경우 자신들의 세계 전략 자체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 펠로시의 '정치적 위치' 놓고 미중 이견
또 하나 제기될 수 있는 의문점은 펠로시라는 인물의 대만 방문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한 것이다.
중국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위배라고 주장하고,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이 변함없다고 말한다.
우선 미국은 펠로시가 의회 대표이지 정부 대표가 아니기에 그의 대만 방문이 정부간 교류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전례도 있고, 미국 상·하원의원은 누차 대만을 왕래해왔기에 이번 펠로시의 방문은 궤도 이탈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미국 의회는 미국 정부의 구성 부분"(7월19일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이라는 입장이다.
삼권분립이 엄격한 미국과 공산당 일당체제의 중국 사이에 건너기 힘든 인식의 강이 존재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같은 민주당 출신으로, 대통령 유고시 권력승계 서열 2위인 펠로시의 정치적 중량감을 중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교감 아래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고 대만 독립 세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미국의 3인자가 대만을 방문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대만은 미국의 대만방어 공약 굳히기로 여기는 듯
이번 갈등의 이면에는 결국 대만을 둘러싼 미중간 전략적 불신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이 대만과 손잡고 궁극적으로 대만을 독립국가로 만들려 한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고, 미국은 중국이 여건만 허락하면 대만을 무력통일하려 한다고 믿는다.
서로 상대를 '대만 해협의 현상변경 세력'으로 간주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중국', '평화 통일 지향' 등은 갈수록 공허해지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대만의 입장은 어떨까?
펠로시의 방문에 중국이 대응할 경우 최강대국인 미국과 정면충돌하기보다는 대만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데 방점을 찍을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지만 대만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펠로시 의장의 방문과 대만 유사시 미국이 대만 방어 여부를 연결 짓는 시각이 존재한다.
비록 뒤이어 미 국방부가 진화에 나서긴 했지만, 이미 바이든 대통령은 5월 23일 도쿄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개입을 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예스(예). 그것이 우리의 약속"이라고 답한 바 있다.
미국은 대만 유사시 참전 여부에 대해 그간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을 당장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중국이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암시한 상황에서 미국 권력서열 3위 인사가 대만을 방문하는 것은 미국의 대만 방어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결국 대만으로선 펠로시의 방문으로 당장은 중국발 공세에 시달릴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억지력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자신들 안보에 도움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을 수 있어 보인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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