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침공에 NPT 3대축 '흔들'…"핵 테러리즘 일어났다"
美 "침공 막으려면 핵무기 필요하다 메시지 줄 것"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막한 제10차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의 화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핵·미사일 개발 속도를 끌어올린 북한과 핵합의 복귀가 불투명한 이란이나 중국도 종종 언급됐으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만큼 '걱정거리'로 지목되는 나라는 없었다.
러시아가 비핵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물론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을 공격하거나 군사 기지화한 것은 '핵보유국의 핵 군축', '핵 비보유국의 핵무기 금지',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등 NPT의 3대 축을 모두 뒤흔드는 심각한 행위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지난 1994년 미국, 영국, 러시아 등과 '부다페스트 각서'를 체결해 옛 소련의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영토보전과 독립 주권을 보장받은 우크라이나가 당시 안보를 약속했던 러시아로부터 침공당한 현 상황이 다른 나라들에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고 주요국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러시아의 행동은 그들이 1994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안보)보장과 상반된다"면서 "주권과 독립을 지키고 침공을 막으려면 핵무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나라들에 어떤 메시지를 주게 될까? 최악의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블링컨 장관은 "러시아는 유럽 최대 원전인 자포리자 원전을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군사기지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의 미콜라 토치츠키 외무부 차관은 "오늘은 비핵국가에 대한 핵 보유국의 전면 침공이 시작된 지 159일째가 되는 날"이라면서 "이유없고 부당한 러시아의 침공이 세계를 침공 전과 이후로 나눴다"고 말했다.
토치츠키 차관은 "러시아 지도부는 공공연히 핵무기 사용 능력으로 세계를 위협한다"면서 "러시아가 크림반도 점령 후 핵무기 배치 지역을 사실상 확대하면서 비확산은 신기루가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러시아의 원전 공격을 가리켜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 핵 시설이 군사적 타깃으로 변했다"면서 "세계는 핵보유국이 지원하는 '핵 테러리즘'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측 대표자도 "EU는 러시아의 이유없고 부당한 침공을 가장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EU는 러시아에 군사 행동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로부터 모든 병력을 철수하며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과 주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 사용 위협은 핵 비확산과 군축 체제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자포리자 원전 점령과 부다페스트 각서 위반, 무모한 핵무기 사용 위협은 NPT에 해로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가운데 핵에 의한 위협이 행해지고 핵무기의 참화가 다시 반복되는 것이 아닌지 세계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북핵 문제보다 러시아 문제를 훨씬 더 많이 언급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중동과 한반도에서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르기까지 핵 위기가 곪아가는 이 시기에 거의 1만3천 개의 핵무기가 전 세계 무기고에 보관돼 있다"며 "인류는 단 한 번의 오해나 계산 착오로 '핵 전멸'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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