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불지핀 '대형마트 규제 완화' 급물살…결정권은 국회에
대형마트, 오전 0∼10시 영업제한·의무휴업 때문에 새벽배송 차질
"쿠팡 등과 경쟁 막는 차별규제" vs "골목상권 잠식 우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국민제안 온라인투표…규제 풀려면 법 개정 필요
(세종=연합뉴스) 김다혜 기자 = 대형마트 영업 규제 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 범위에서 온라인 배송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대통령실이 한발 더 나아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까지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에 부치면서다.
소상공인들은 "골목상권 최후의 보호막을 없애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일에도 오프라인 점포를 활용한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의무휴업 제도를 폐지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해 향후 국회 입법 과정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대형마트, 오전 0∼10시 영업제한 때문에 '새벽배송' 못하는 건 문제"
24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공정위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가로막는 영업 제한 조항 등 44건을 경쟁 제한적 규제로 선정해 관련 부처와 개선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공정위는 매년 다른 부처 소관 규제 중 경쟁 제한적 요소가 있는 것들을 선정해 개선을 추진한다. 올해는 윤석열 정부의 '규제 혁신' 기조에 맞춰 이해관계자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주제도 과감히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은 매월 이틀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로 지정해야 하고, 영업시간도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 사이 범위에서 제한할 수 있다.
이런 영업 규제는 골목상권을 보호해 상생과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유통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한편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2012년 도입됐다.
법에는 온라인 배송에 관한 규정이 명시돼 있지 않으나, 법제처가 영업 제한 시간 또는 의무휴업일에 오프라인 점포를 물류·배송기지로 활용해 온라인 영업을 하는 행위는 점포를 개방하는 것과 사실상 같은 효과를 가지므로 법에 어긋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가 운영하는 인터넷쇼핑몰은 영업제한 시간(오전 0∼10시)에 오프라인 점포를 활용해 새벽배송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별도 물류창고를 활용해 온라인 배송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실제로 이마트몰(쓱닷컴)은 현재 전용 물류센터를 활용해 수도권, 충청 지역에만 새벽배송을 지원한다.
공정위는 이런 영업 규제가 경쟁 제한적이며 차별 소지가 있고 소비자의 편익을 저해해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쿠팡, 마켓컬리 등 대형 온라인 유통업체들은 영업 제한을 전혀 받지 않지만 대형마트는 온라인 영업을 할 때도 제한을 받아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의 경쟁과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형마트의 온라인 영업을 규제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이나 중소 유통업체를 이용하기보다는 쿠팡 등 다른 온라인 유통업체로 소비를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 '전통시장·골목상권 보호'라는 규제 목적 측면에서 실효성이 약하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도 거론…소상공인 강력 반발
이런 가운데 대통령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를 아예 폐지하는 안까지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최저임금 차등 적용, 휴대전화 모바일 데이터 잔량 이월 허용 등 국민제안 10건을 선정해 지난 21일부터 온라인 투표에 부친 것이다. 대통령실은 투표 결과 3건을 추려 실제 국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오후 1시 15분 기준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제안은 18만9천155건의 '좋아요'를 획득해 10건의 제안 중 가장 호응이 많았다.
지난 20일 주식시장에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폐지 기대감으로 이마트[139480]와 롯데쇼핑[023530] 주가가 전 거래일보다 각각 8.33%, 4.13% 오르며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혁신해 민간 주도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는 만큼, 정부로서는 어느 수준으로든 대형마트 영업 규제 완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소상공인,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상생 발전을 도모한다는 법 도입 취지를 고려해 규제 완화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금도 대형마트가 별도의 물류센터를 활용해 온라인 영업을 하는 데 제한이 없으므로, 대형마트가 다른 온라인 유통업체와 비교해 차별받는다고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은 2018년 대형마트 7곳이 낸 헌법소원에서 합헌 결정된 바 있다"며 "적법성이 인정됐음에도 새 정부는 국민투표를 통해 골목상권의 보호막을 제거하고 대기업의 숙원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상공인연합회도 지난 11일 "코로나19 이후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마트 휴무일 온라인 배송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소상공인을 더 큰 어려움으로 몰아넣는 결정"이라며 "10년 전에는 기울어졌던 운동장이 이제는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바뀌었다고 판단하는 것인지 공정위에 되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규제 풀려면 법 개정해야…국회엔 이미 관련 법안들 계류 중
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일에도 오프라인 점포를 활용한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의무휴업 제도를 폐지하려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필요하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공정위가 제안한 온라인 배송 규제 개선은) 법률 개정 사안이고 국회에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며 "기본적으로는 국회에서 논의돼 추진돼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는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일이나 영업시간 제한에 상관없이 온라인 상품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도 2020년 7월 유사한 취지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지자체가 지역 주민 등과 협의해 의무휴업일 수와 요일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의무휴업일을 아예 지정하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반대로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더 강화하는 취지의 법 개정안들도 발의돼 있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범위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로 확대하고 추석과 설날 당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는 한편, 복합쇼핑몰과 백화점, 면세점 등을 영업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복합쇼핑몰을 영업행위 규제 대상에 포함하고 대형마트가 등록된 건물 이외의 장소에서 영업(출장 세일 등)하지 못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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