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족 학살의혹 재판 본궤도에…미얀마 이의 기각

입력 2022-07-23 10:48
로힝야족 학살의혹 재판 본궤도에…미얀마 이의 기각

국제사법재판소 "제노사이드협약 당사국은 소송 제기 가능"

감비아 "법원에서 정의 구현"…최종 판결까지는 수년 걸릴 듯



(방콕=연합뉴스) 강종훈 특파원 =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 의혹에 대한 재판이 국제법정에서 본격적으로 열리게 됐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2일(현지시간) ICJ가 이 사건을 다루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미얀마가 제기한 이의를 기각했다고 AP와 AFP 등 외신이 보도했다.

ICJ는 '제노사이드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체결국은 집단학살을 막아야 하고 막기 위한 행동을 할 수 있다며, ICJ에 이 사건에 대한 사법권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장인 존 도너휴 판사는 결정문에서 "제노사이드 협약의 당사국이라면 다른 당사국에 소송 제기를 비롯한 방법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1948년 유엔에서 채택된 제노사이드 협약은 국민, 인종, 민족, 종교 등의 차이로 집단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행위를 국제 범죄로 규정하고, 각국이 협력해 이를 방지하고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얀마군은 2017년 8월 서부 라카인주에서 무슬림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일부가 종교 탄압 등에 반발해 경찰 초소를 습격하자 대대적인 토벌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정부군은 곳곳에서 성폭행, 학살, 방화를 저질렀다. 로힝야족 수천 명이 숨졌고, 70만명이 넘는 난민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2019년 11월 아프리카 이슬람국 감비아가 미얀마 정부를 집단 학살 혐의로 ICJ에 제소하면서 이 사건은 국제법정으로 가게 됐다.

현재 군정에 의해 구금 중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은 같은 해 12월 말 ICJ에 출석해 학살 의혹을 부인하면서 ICJ에 사법권이 없다고 주장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당시 수치 고문은 로힝야 반군의 공격에 미얀마군이 대응한 것이었으며 집단학살 의도는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지난해 2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도 이 제소에 대한 사법권이 ICJ에 없어 재판을 인정할 수 없다며 같은 주장을 폈다.

군정 측은 원고인 감비아가 집단학살 의혹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소송을 실제로 제기한 쪽은 이슬람협력기구(OIC)로, 감비아는 OIC를 대신해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구가 아닌 국가만이 ICJ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든 논리이다.

1969년 설립된 OIC는 이슬람을 국교로 한 국가 57개국이 모인 국제기구이다.

그러나 ICJ가 "감비아는 제노사이드 협약의 당사국"이라며 미얀마 측 주장을 일축함으로써 재판은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이날 결정에 대해 감비아 법무장관은 "법원이 정의를 구현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환영을 표했다.

미얀마 측 변호인은 "우리 국민과 국가를 보호할 최선의 방법을 찾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ICJ는 이 사건의 재판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며, 결론이 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ICJ는 2차대전 이후 유엔 회원국 간 분쟁을 취급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다. ICJ의 판결은 법적 구속력이 있지만, 따르도록 강제할 실질적인 수단은 없다.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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