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 넘던 영국·프랑스, 갑자기 쌀쌀한 아침…폭염 파장은 지속

입력 2022-07-20 21:24
40도 넘던 영국·프랑스, 갑자기 쌀쌀한 아침…폭염 파장은 지속

런던 소방당국 "2차대전 이후 가장 바쁜 날"…철도운행 계속 중단

프랑스 대형산불 아직 진압 안돼…영국 기후변화 대응 비상



(런던·파리=연합뉴스) 최윤정 현혜란 특파원 = 섭씨 40도를 넘기며 오븐 속처럼 달아올랐던 영국과 프랑스에 서늘한 아침 바람이 불었다.

2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은 아침 기온이 20도 아래로 내려가고 최고 예상 기온도 26도에 그치며 평소 수준의 여름 날씨로 돌아왔다.

전날 저녁 비가 살짝 뿌렸는데도 밤까지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새벽에는 기온이 급격히 내려갔다.

전날 40.3도를 찍으며 관측 이래 최고 기록을 세운 중부 링컨셔주의 코닝스비 지역은 이날 최고 기온이 29도로 예보됐다.

이 지역의 21일 예상 기온은 최고 21도, 최저 13도이고 22일엔 19∼12도로 더 내려간다.

잉글랜드 상당수 지역에는 이날 오후 폭우 황색경보가 발령됐다.



런던에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20대 직장인 루비 제임스씨는 "런던에서 평생 살았는데 월, 화요일 더위는 처음 겪어보는 정도였고 직장에서 정장을 입어야 하는 친구들도 어제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갔다고 한다"며 "오늘은 날씨가 많이 시원해졌지만 지하철엔 열기가 아직 남아서 더웠다"고 말했다.

전날 낮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어서며 펄펄 끓었던 프랑스 파리에도 이날 오전 일찍부터 비가 내리면서 더위가 한풀 꺾였다.

낮 최고 기온은 25도로 전날에 비하면 쌀쌀해져서 길거리에서는 트렌치코트, 카디건, 후드 티셔츠같이 긴 소매 옷을 챙겨입은 사람들을 쉽게 마주쳤다.

에펠탑이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만난 미국인 관광객 멜라니(42)는 "날씨가 선선해져 너무 행복하다"며 웃음을 지었다.

런던에 들렀다 이날 파리에 도착했다는 그는 기차가 연착되는 바람에 일정이 꼬였지만, 무더위가 가셨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불운을 잊게 해준다고 말했다.

멜라니는 "지난 며칠 동안은 밖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지쳐서 여행을 즐기지 못했는데, 이제는 남은 휴가를 충만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기상청은 프랑스 대부분 지역에서 최저 기온이 15∼22도 사이, 최고 기온이 25∼29도를 오갈 것으로 관측했다.

다만, 동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낮 최고기온이 33∼38도까지 올라갈 것으로 봤다.

프랑스는 전날 64개 지역에서 최고 기온 기록이 경신됐고 파리는 40.1도로 기상 관측 이래 세 번째로 더운 날로 기록됐다.

폭염은 한풀 꺾였지만 파장은 지속되고 있다.

영국 철도시설공단인 네트워크 레일은 전력선이 망가져서 이날도 런던과 스코틀랜드 간 직행 철도 운행이 중단된다고 말했다.

전국 병원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예정된 수술이 밀렸고 구급대는 폭염으로 인한 앰뷸런스 호출이 주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요크셔, 링컨셔 등 잉글랜드 동북부 지역은 고온에 장비가 과열돼 정전됐다.

더위를 피해 호수와 강에 뛰어들었다가 사망한 인원이 9명이 넘었다.

폭염에서 작은 불씨도 크게 번지면서 화재가 잇따랐고 영국 15개 지역 소방당국은 '중대사건'을 선언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화재 신고가 평소 350통 정도인데 전날 2천600통이 쏟아져 들어와서 소방당국이 2차 대전 이후 가장 바쁜 날을 보냈다고 말했다.

런던 동부 웨닝턴 지역에선 화재로 주택 여러 채와 차량 다섯 대가 파손됐다.

화재 신고를 한 팀 스톡씨는 "이웃집 정원에서 불이 난 것을 보고 끄려고 했지만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며 "우리집을 포함해서 15∼20채는 전소됐거나 살 수 없을 지경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를 품고 있는 프랑스 남서부 지롱드 주에서는 대형 산불이 여전히 잡히지 않아 소방당국이 진압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후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 등과 함께 산불 피해가 심각한 지역을 둘러볼 예정이다. 이번 화재로 지롱드에서는 파리 면적의 두 배에 가까운 2만600헥타르가 불에 탔으며 주민 3만6천명 이상이 대피했다.



영국은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이상고온 현상이 자주 나타날 것이란 전망에 비상이 걸렸다.

연중 기온 변화가 크지 않은 영국은 폭염 대비가 잘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주택, 대중교통 등에 냉난방 설비가 거의 없고 철로 등 기반시설도 설치 시 이 정도 고온 조건이 고려되지 않았다.

국가소방고위급위원회(NFCC) 관계자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호주, 남유럽 등에서나 보던 모습이 보였다고 지적하고 영국도 산불 대응 장비 확보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상청 최고 과학책임자 스티븐 벨처는 BBC 인터뷰에서 "기온이 매우 높이 올라갔고 넓은 지역에서 폭염이 발생한 점이 놀라웠다"며 "온실가스 배출을 공격적으로 감축하면 고온현상이 나타나는 주기도 급격히 단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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