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드라기 내각 운명 20일 결정…존속·붕괴 갈림길
상·하원 내각 신임안 표결…"드라기, 아직 사임 의지 강해"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내홍으로 붕괴 위기에 직면한 이탈리아 내각의 운명이 오는 20일(이하 현지시간) 의회에서 결정된다.
공영방송 라이(Rai)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내각을 이끄는 마리오 드라기 총리는 당일 상·하원 연설에서 현 정국 상황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뒤 신임 투표를 거치게 된다.
드라기 총리가 어떤 입장을 밝힐지는 불분명하나 현재로서는 내각의 수명을 억지로 연장하기보다 사임하겠다는 의지가 더 강하다는 게 주변인들의 전언이다.
연정 구성 정당들이 20일 이전까지 드라기 내각 지지를 선언하는 '대타협'을 하지 못하면 연정은 신임 투표에서 과반을 얻는 데 실패하고 사실상 붕괴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정국 향배의 키를 쥐게 된다.
그는 새로운 총리를 지명해 현 의회 임기가 마무리되는 내년 상반기까지 내각을 잇게 할지, 아니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할지 결정해야 한다.
연정 구성 정당 사이에서는 드라기 내각이 붕괴하면 조기 총선 외에 대안이 없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연정에 참여하지 않은 극우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은 정국 위기가 도래한 이래 줄곧 조기 총선 실시를 주장해왔다. FdI는 현재 정당 지지율 1위에 올라있다.
조기 총선이 실시될 경우 시점은 10월 초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번 정국 위기는 원내 최대 정당이자 드라기 연정의 중심축인 범좌파 성향의 오성운동(M5S)이 지난 14일 드라기 총리 내각 신임안과 연계된 상원의 민생지원법안 표결에 불참하면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오성운동 당수인 주세페 콘테 전 총리는 민생 안정 대책을 비롯한 사회·경제 정책에서 오성운동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연정을 코너로 몰아붙이는 '벼랑 끝 전술'을 택했다.
그러자 드라기 총리가 오성운동의 지지 없이는 내각을 이끌 수 없다며 당일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전격적으로 사임서를 제출하면서 연정 붕괴 위기가 현실화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일단 드라기 총리의 사임서를 반려하고 의회에 재차 의견을 물어보도록 했다. 하지만 20일 의회의 신임안 투표에서 과반 지지가 나오지 않으면 그로서도 더는 드라기 총리를 붙잡아둘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연정 붕괴의 암운이 점점 짙어지는 가운데 원외에서는 드라기 총리의 잔류를 촉구하는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주말 전국의 행정관리 1천여 명이 드라기 총리에게 직책을 계속 수행해달라는 공동 호소문을 낸 데 이어 18일에는 주요 일간지인 '코리에레델라세라'에 같은 취지의 전국 대학 총장들 서한이 실렸다.
경제계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국정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드라기 내각의 존속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드라기 총리는 18일 아프리카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인 알제리를 찾아 압델마드지드 테분 대통령과 이탈리아로의 천연가스 공급 확대 방안을 협의했다.
드라기 총리는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국내 정국 이슈에 대해선 발언을 삼가는 등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는 귀국 후 의회 연설문을 가다듬는 등 본격적으로 신임안 표결을 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출신인 드라기 총리는 작년 2월 연정 붕괴로 사임한 콘테 전 총리의 후임으로 내각 사령탑을 맡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팬데믹 경제 위기 등 현안에 무난하게 대응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lu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