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마약과의 전쟁' 조사 재개하나…필리핀 정부에 "의견 달라"
9월까지 희생자 가족·검사실 의견 취합해 최종 결정
칸 검사장 "현지 정부, 제대로 조사 안해"…두테르테 측 "결과 기다려야"
(하노이=연합뉴스) 김범수 특파원 =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마약과의 전쟁' 조사 재개 여부와 관련해 입장을 표명해달라고 필리핀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18일 현지매체인 ABS-CBN에 따르면 ICC는 마약과의 전쟁에 관한 조사를 재개하겠다는 검사실의 방침과 관련해 오는 9월 8일까지 의견을 달라고 최근 필리핀 정부에 공문을 보냈다.
ICC는 마약과의 전쟁 당시 숨진 희생자들의 가족과 법률 대리인들에게도 같은날까지 입장을 보내달라고 했다.
지난해 9월 ICC는 마약과의 전쟁을 반인륜 범죄로 규정하고 정식 조사에 나서겠다는 검사실의 요청을 승인했다.
이후 필리핀 정부가 같은해 11월 10일 자체적으로 진상을 파악중이라면서 유예를 신청해 지금까지 조사가 연기됐다.
그러나 지난달말 카림 칸 ICC 검사장은 "필리핀 정부가 제대로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자체적으로 조사를 재개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ICC는 필리핀 정부 및 희생자 가족들로부터 의견을 취합한 뒤 이에 대한 칸 검사장의 입장까지 반영해 조사 재개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반면 마약과의 전쟁을 주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측은 이같은 ICC 검사실의 방침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달 25일 당시 대통령실 대변인 마틴 안다나르는 "행정부는 적법한 마약 범죄 소탕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사망 사건을 조사 중"이라면서 "ICC는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메나르도 게바라 전 법무부 장관도 "이번 조사는 단기간내에 마무리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면서 "ICC 검사실은 정부의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어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법무부는 지난 2020년 2월부터 마약과의 전쟁에서 자행된 경찰의 초법적 처형 사례 등을 파악중이며 현재까지 52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ICC 검사실은 "책상에 앉아서 들여다본 내용에 불과하다"면서 필리핀 정부의 조사 의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두테르테는 취임한 직후인 2016년 7월부터 전역에서 마약 범죄 소탕 작전을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6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총 6천252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으나 인권단체들은 희생자 수가 3만명에 육박한다고 주장해왔다.
인권단체들은 경찰이 마구 살상을 자행했다고 비난해온 반면 경찰은 용의자들이 무장했기 때문에 무력 대응이 불가피했다고 맞서왔다.
bum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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