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서방 협력국' 러·이란, 원자재 수출경쟁 날로 격화

입력 2022-07-17 21:43
'反서방 협력국' 러·이란, 원자재 수출경쟁 날로 격화

러, 제재 피해 중·인도에 저가공급…이란 점유율 빼앗아

"러시아가 시장 파괴" 반발…"이란 제재회피 능력 저해" 해석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반(反)서방' 노선을 공유하던 러시아와 이란이 원자재 시장에서 날 선 경쟁을 벌이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과 러시아는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원유, 석유 정제 제품, 금속 등의 시장 점유율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에너지 시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WSJ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 대상이 된 러시아가 공급 가격을 깎아 아시아 시장에 공급량을 늘리고 있다.

최대 석유 소비국인 인도와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서 대체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두 나라는 서방 제재에 동참을 거부하고 러시아산 원유와 금속을 값싼 가격에 사들이고 있다.

러시아는 두 나라뿐만 아니라 터키, 아랍에미리트(UAE), 아프가니스탄 등 아시아 전역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이란은 미국의 제재에 맞서 중국과 인도, 터키, UAE 등에 석유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해왔다.

그러나 러시아 회사들이 유럽 사업을 줄이고 이란의 '뒷마당'에 손을 뻗으면서 위기에 몰린 모양새다.

이란과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서방의 제재 대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제재 명분이다.

오는 19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란 테헤란을 방문, 양국 간 긴밀한 파트너십을 과시할 예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적 관계와 별개로 이란 재계는 러시아의 '불공정 경쟁' 행위에 분노를 토로하고 있다.

한 이란 중개업자는 인도와 중국 구매자들이 러시아의 철강 가격에 맞춰 톤당 30달러씩 깎아달라고 한다며 "살인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란 석유·가스 수출 연합의 하미드 호세이니 대변인은 "그들(러시아)이 시장을 파괴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과 경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시아와 캅카스 전역에서 러시아는 액화 석유(LPG)를 정상가격(t당 900달러)의 3분의 1 가격에 팔고 있다. 경유는 국제가격(1천200달러)의 4분의 3 수준인 900달러에 판매한다.

외견상 양국 간 외교 분열의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러시아를 신뢰하지 않는 이란인들도 많다.

과거 러시아가 19세기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페르시아 제국의 캅카스 영토를 정복하고, 1940년대까지 이란 내정에 간섭했다는 점에서 러시아를 껄끄럽게 보는 시각이 있어서다.

정치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헨리 롬 부소장은 "(석유와 석유제품 판매는) 경제적 압박을 견디기 위한 이란 정권 노력의 핵심"이라며 "러시아와의 정치·전략적 관계와 원자재 사업에서 경쟁 간 실제 단절이 있다"고 설명했다.

롬 부소장은 이런 경쟁은 이란의 제재 회피 능력을 해치고, 유럽과 미국과의 핵 협상에서 이란의 지렛대를 줄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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