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굴복한 명분…"바이든 유가잡기, 결국 'MBS'에 달려"
바이든 사우디행, 국제정치서 '부와 자원권력이 최고' 방증
NYT "무함마드 왕세자가 승리 외쳐도 된다"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결국 고유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MBS(무함마드 빈 살만)를 통할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자말 카슈끄지 암살 지시 등 각종 인권 관련 의혹에 둘러싸인 무함마드 왕세자를 만나러 사우디를 찾는 처지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이렇게 정리했다.
아무리 그와 상종하기 싫다 한들 인플레를 부채질하는 에너지 가격을 진정시키려면 '석유 왕국' 사우디의 증산이 필요하고, 사우디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무함마드 왕세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다.
현재 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바이든 대통령은 15일 사우디로 넘어가 무함마드 왕세자를 대좌한다.
유럽 외교위원회 방문 연구원 신지아 비앙코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국내 정치에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기에 사우디에 뭔가를 얘기하려면 그를 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7년 전 아버지 살만 빈 알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집권할 때만 해도 갑자기 정치무대에 등장한 신인이었지만 차츰 부왕의 권력을 넘겨받으면서 지금은 명실상부한 사우디의 실세이자 사실상 최고 정점이 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왕실의 경쟁자들을 핍박하는 등 각종 인권 문제를 일으켰고 대외적으로는 예멘 후티 반군에 무자비한 폭격을 가하기도 했다.
급기야 2018년 10월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자신에 비판적이었던 언론인 카슈끄지의 암살을 지시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런 그를 국제사회의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그와 대화를 거부하며 철저히 소외시키려 했다. 사우디와 대화해야 한다면 그 파트너는 공식적인 정상인 살만 국왕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미국의 인플레가 4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하자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다급해졌다.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석유수출국기구(OPEC)을 이끄는 사우디, 즉 무함마드 왕세자가 증산을 결심하도록 설득해야만 하는 처지다. 그러나 미국의 뒤늦은 '구애'에 왕세자 측은 냉담하다.
4월 무함마드 왕세자는 시사잡지 애틀랜틱과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을 오해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냥 관심이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번 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무함마드 왕세자의 무대인 사우디로 날아가 그를 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왕세자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고, 그가 꿈꾸는 새로운 사우디의 모습을 지지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36세의 젊은 왕세자는 과거 조용히 오일 달러를 뿌리며 역내 영향력을 유지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조국을 좀더 역동적이고 외교·군사적으로도 강력한 국가로 만들려 한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관광이나 IT 등 다른 산업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여성에게 운전과 영화관 출입 등을 허용하고 복장 규제를 완화하는 등 일부 사회개혁을 추진하기도 했다.
카슈끄지 살해 사건 이전까지 무함마드 왕세자는 중동의 젊은 '계몽군주'로 평가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결국 국제정치에서 부와 자원 권력이 최고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고, 인권에 기반을 둔 외교 정책을 추진한다는 그의 신념이 거짓말이 됐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사실 지금까지 미국과 사우디 권력자 등 전제 군주들과의 관계는 서로 거리를 두기보다는 서로 섞이면서 거래해 온 역사로 점철됐다고 NYT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사우디는 바이든 정부에 섭섭한 것이 많은 상태다.
미국은 사우디의 반대에도 이란과 핵 협상을 재개했고 사우디의 도시와 정유시설이 예멘 반군의 드론·미사일 공격을 받을 때도 미국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데니스 로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만난 사우디 사람들은 '미국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전화해서 말하고 우리의 답을 들으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땐 아무도 듣지 않았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양국의 관계를 어긋난 연인 관계로 비유하기도 한다.
로스 연구원은 "사우디로선 연인에게 차이고 나서 '나한테 왜 이러지'라는, 어리둥절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워싱턴에 있는 중동학회의 브라이언 캐털리스 연구원은 "양국의 관계는 결혼에 비유하자면 상담이 엄청나게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젠 바이든 대통령이 무함마드 왕세자를 보기 위해 직접 사우디에 가는 상황만으로도 왕세자로선 승리를 외칠 만하다고 야스민 파로크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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