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낙태권 후퇴' 판결 후 대법관 증원·임기 제한 논쟁 촉발
민주당 진보의원들 주도…당내 이견에 공화당 반대로 현실화 쉽지 않아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낙태권을 헌법에 규정된 권리로 볼 수 없다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미국 정치권에서 대법원 개혁 문제가 또다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 9명인 연방대법관의 이념 분포는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보수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
대법원이 지난달 24일 연방 차원의 낙태권 보호 판례를 파기한 것을 비롯해 보수 성향의 판결을 잇따라 내린 것은 이런 대법관 구조의 불균형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민주당의 인식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에서는 대법관 수를 확대하거나 종신제인 임기를 제한하는 방안, 윤리강령을 채택하는 방안 등 제도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수는 헌법에 규정돼 있지 않고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돼 있으며, 지난 1869년 이후 9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937년 민주당 출신이었던 당시 프랭크 D.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추진하면서 대법원과 충돌하자 대법관수를 늘리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연방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한 뒤 상원의 동의를 받아 정식 임명하게 되는데, 한국의 대법관과는 달리 스스로 사임하거나 범죄행위로 탄핵받지 않는 한 헌법에 의거해 종신까지 임기가 보장된다.
이런 가운데 에드 마키 민주당 상원 의원은 대법관 수를 9명에서 13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이미 제출한 상태다.
이 법안에는 같은 당 엘리자베스 워런, 티나 스미스 상원 의원만이 서명했지만, 최근 들어 민주당 내 찬성하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 의원은 대법관 수 확대와 임기 제한 문제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밝혔고, 마지 히로노 상원 의원은 이들 두 사안 모두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연방대법관에 대한 윤리강령 채택 문제도 민주당에서 제기되는 화두다.
방문객 목록이나 경비를 전액 지원 받는 여행 등에 대한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방판사들에 적용되는 행동강령이 있지만 대법관은 예외적으로 이 강령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 방안들이 현실화하긴 쉽지 않다는 관측이 높다.
대법관 수를 늘리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할 경우 공화당의 반대를 넘어서려면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절차(필리버스터) 무력화에 필요한 60명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상원(100석)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반분하고 있다.
더욱이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부정적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오는 11월 중간선거 때 경합지역에서 싸우는 민주당 의원들의 경우 이 논의가 온건 성향이나 무당파 유권자로부터 역풍을 불러올 것을 우려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례로 NPR와 PBS가 성인 94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4%는 대법관 확충을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더힐은 "상원의 민주당 의원들이 대법관 확충을 놓고 분열돼 있다"며 진보적 의원들이 이 논의를 주도하지만 역풍을 우려한 의원들은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관 임기제한 도입 문제는 헌법과 관련된 사항이기 때문에 이를 개혁하는 것은 법 개정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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