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반정부 시위 1년…거리의 외침 사라졌지만 고난은 여전
작년 7월 11일 이례적 반정부 시위 발발 후 수백 명 징역형
시위 촉발한 경제위기는 진행형…쿠바인 미국행도 계속 늘어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2021년 7월 11일 수도 아바나를 비롯한 쿠바 곳곳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자유'와 '독재 타도' 등을 외쳤다.
공산국가 쿠바에선 매우 이례적인 반(反)정부 시위였고, 그 규모도 1959년 공산혁명 이후 62년 만에 최대로 분석됐다.
당국의 발 빠른 강경 진압으로 시위 불꽃은 금세 꺼졌지만, 시민을 분노하게 한 경제위기 등은 1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불씨로 남아있다.
◇ 이틀 만에 끝난 시위…1년 새 시위대 수백 명 징역형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 당시 시위는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로 뜻을 모은 사람들이 기습적으로 감행한 것이었다.
잦은 정전과 생필품난 등에 지친 쿠바인들은 참다 못해 거리로 나와 공산정권을 향해 불만을 쏟아냈다. 굶주림을 호소하며 식량을 달라는 외침부터 '자유' '독재 타도' 등의 구호도 나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 마이애미와 스페인 등 쿠바계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곳곳에도 지지 시위가 벌어졌다.
쿠바 정부의 대응은 빨랐다.
시위 직후 당국은 한동안 소셜미디어 접속을 차단했고, 시위자들을 무더기로 연행했다.
강경 진압 탓에 시위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이튿날인 12일 일부 지역서 소규모 시위가 이어진 게 끝이었다.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당시 시위로 체포된 이들은 1천400명이 넘는다.
지난달 정부는 지금까지 총 488명이 시위 참가에 따른 공공질서 훼손 등의 혐의로 법원의 선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최고 25년의 징역형을 받은 이들도 있다.
시위 참가자들이 줄줄이 체포되거나, 체포를 피해 망명하면서 후속 시위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15일 또 한 차례의 반정부 시위가 예고됐으나 당국이 시위 주동자를 체포하는 등 사전 진압에 나서면서 결국 불발됐다.
◇ 극심한 경제 위기는 진행형
쿠바 정부는 당시 시위가 미국의 선동에 따른 것이라고 비난하며 시위대를 탄압하면서도, 동시에 민심을 달래기 위한 대책들도 일부 내놨다.
입국자의 음식·식료품 반입 한도를 없앤 것이 그중 하나였다.
지지부진한 경제 개혁의 속도도 다소 높여 지난해 8월 민간 중소기업의 설립을 허용했다. 쿠바 정부는 이후 지금까지 3천980개의 민간 중소기업이 설립돼 6만6천300개의 일자리가 생겼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도 쿠바의 극심한 경제위기를 해소하긴 역부족이다.
1년 전 시위 무렵 쿠바는 관광업 위축 등 코로나19 충격과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에서 더 수위가 높아진 미국의 경제 제재 등이 맞물리며 1990년 소비에트연방 붕괴 이후 최악이라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다.
코로나19 위기는 한풀 꺾였지만 회복은 더뎠고, 이중통화 폐지 등으로 인한 가파른 물가 상승과 물품 부족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악화했다.
미국에서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에도 쿠바가 기대했던 통 큰 제재 완화나 해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은 쿠바 주민의 생활고를 완화하기 위해 쿠바에 대한 송금과 여행 규제를 일부 완화하고, 아바나 주재 대사관에서의 비자 업무를 재개했지만, 동시에 시위대 탄압의 책임을 물어 쿠바 정권 인사들에 대한 제재는 확대했다.
◇ 육로로 바다로…희망 잃은 쿠바인들 미국행 증가
나아질 길이 보이지 않는 경제난과 자유가 억압된 현실에 지친 쿠바인들은 고국을 등지고 있다.
미 정부에 따르면 2022 회계연도가 시작된 지난 2022년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미 육로 국경을 무단으로 넘다 적발된 쿠바인들은 14만 명가량에 달한다.
1980년대 쿠바 경제난 속에 쿠바 마리옐 항을 통해 12만5천여 명의 쿠바인들이 미국으로 간 이른바 '마리엘 엑소더스' 때보다도 큰 규모다.
육로 미국행 시도가 크게 늘었지만, 카리브해를 건너 미국으로 가려는 시도 또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5월까지 해상에서 적발된 쿠바인들은 2천464명으로, 2016년 이후 최다라고 미 해안경비대는 밝혔다.
쿠바 태생 변호사인 루이스 카를로스 바티스타는 AP통신에 "10개월 사이 쿠바 인구의 1.5%가 떠났을 수도 있다"며 "쿠바에서 삶을 이어가려는 젊은이들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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