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사망에 日정국 '격랑'…"방위력 강화 논의 방향에 영향"

입력 2022-07-09 14:21
아베 사망에 日정국 '격랑'…"방위력 강화 논의 방향에 영향"

요미우리 "자민당 역학구도 크게 변할 것"…산케이 "개헌에도 영향"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 주목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을 이끌어온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사망 사건으로 일본 정국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자민당 내 역학 구도의 변화가 불가피하고, 아베파가 주된 동력을 제공해온 방위력 강화와 헌법 개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방위력 강화 논의 방향에 영향"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올 연말까지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안보 관련 문서 3종을 개정할 예정이다.

이를 앞두고 연초 자민당은 기시다 내각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국방 예산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상 목표도 염두에 두고 내년부터 5년 이내에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에 필요한 예산 수준의 달성을 목표로 한다", "탄도미사일 공격을 포함해 우리나라를 향한 무력 공격에 대한 반격 능력을 보유해 공격을 억지하고 대처한다", "헌법 9조에 자위대 존재 근거를 명시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해 조기 실현한다"는 내용을 담은 제안을 공식 제출했다.

일본 안보정책의 대전환을 요구한 것으로 아베 전 총리와 그의 측근들이 주도해온 주장들이다.

제안을 받은 기시다 총리는 "제대로 받아들여서 논의를 추진하고 싶다"고 반응했다.

자민당의 제언은 이번 참의원 선거 공약에 그대로 담겼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연말에는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개 (안보) 문서의 개정을 앞두고 있다"며 "참의원 선거 후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지만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은 논의의 방향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연말에 결정할 국가안전보장전략 개정에 동반한 방위비 증액은 여당 내 여전히 온도 차가 남아 있다. 'GDP 대비 2%' 증액에 대한 신중론과 '반격 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을 신중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며 아베 전 총리 사망이 방위력 강화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거론했다.

강경 보수 성향의 산케이신문 역시 "아베 전 총리의 부재로 개헌과 방위력 강화를 위한 추진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아베파 불안해지면 당내 역학관계 크게 변할 것"

아베파는 소속 국회의원이 94명으로 자민당 전체 의원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기시다 총리가 이끄는 '기시다파'는 자민당 내 4위 파벌로 소속 의원이 44명으로 아베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베 전 총리는 최대 파벌의 수장이라는 당내 영향력과 일본 우익의 구심점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무기로 2020년 9월 총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은 9일 "아베파에서 관방장관, 경제산업상, 방위상(이상 각료), 총무회장, 국회대책위원장(이상 당직) 등 정부와 여당의 핵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기시다 총리도 큰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는 사전에 아베 전 총리와의 상담을 거르지 않았다"며 아베 전 총리의 정치적 영향력을 소개했다.

아베파의 지원에 힘입어 총리에 오른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눈치를 봐야 했다.

이런 아베의 부재를 두고 요미우리는 아베파는 아베 전 총리를 중심으로 결속해왔는데 현재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이라며 "최대 파벌이 불안해지면 당내 역학 관계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구심력을 잃은 아베파의 힘이 약해지고 심지어 분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베 전 총리처럼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가 1985년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당시 자민당 최대 파벌이었던 '다나카파'도 후계자가 없어 분열한 바 있다.



◇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 주목

일본의 우경화를 주도해온 아베의 부재는 한일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2차 아베 정권(2012.12~2020.9) 기간 한일관계는 악화 일로였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성격인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등으로 한일관계가 크게 훼손됐다.

아베 전 총리는 퇴임 후에도 막후에서 한일 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기시다 총리가 올해 1월 한국이 강하게 반대했던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을 보류하려고 하다가 아베 전 총리가 "(한국이) 역사전(戰)을 걸어 온 이상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압박하자 추천 쪽으로 선회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일본 정치에 정통한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는 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아베의 사망으로 자민당 내 정치적 공백이 생겼고 내일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 향후 3년 동안 선거가 없어 기시다 장기 정권의 기반이 마련된다"며 "기시다가 자신의 정치색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기시다는 아베와 달리 온건파, 비둘기파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한국의 정권도 바뀌고 했으니 냉각된 한일관계를 돌리기에는 좋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도 전날 "아베 전 총리의 힘이 강해 현직 총리도 아베 전 총리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아베라는 큰 압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가 자신의 정치색을 내는데 플러스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쿠조노 교수는 "그중에는 한일관계도 포함된다"며 기시다 총리가 강경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한일 관계에서 좀 더 유연성을 발휘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참의원 선거 이후 박진 외교부 장관의 일본 방문 등 한일 대화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일제 강제 동원 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 등 역사 문제에서 일본 정부가 기존의 태도를 쉽게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일본 정부는 역사 갈등 현안에서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헌모 교수는 양국에서 정치적 민감성이 큰 역사 현안은 조급하게 해결하기보다는 신중하게 충분히 시간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기시다도 일본군 위안부와 징용 문제에서 양보하지는 않겠지만 아베보다는 유연하게 물밑에서 (한국과) 접촉하거나 (한일) 민간 교류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예상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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