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허준이 교수 필즈상 수상 쾌거…기초과학 투자 확대 계기 되길
(서울=연합뉴스) 한국계 수학자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석학 교수가 5일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했다. 국제수학연맹(IMU)은 이날 핀란드 헬싱키 알토 대학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다른 3명과 함께 허 교수를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한국인이나 한국계 학자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년마다 열리는 국제수학자대회(ICM)에 맞춰 수여하는 필즈상은 40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수학 분야 최고의 상이다. 만 39세인 허 교수에게는 올해가 이 상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2012년 리드 추측을 시작으로 강한 메이슨 추측, 다우링-윌슨 추측, 로타 추측 등 수학계의 오랜 난제들을 차례로 증명해 일찌감치 이 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국제무대에서 학문적 성과가 알려지면서 사이먼스 연구자상, 삼성 호암상, 뉴호라이즌상, 블라바트닉 젊은과학자상 등을 받기도 했다. 허 교수가 미국 국적자이긴 하나 한국에서 초등학교부터 석사 과정까지 마쳤다는 점에서 그의 필즈상 수상은 국내 수학계의 쾌거이자 국가적 경사이다.
허 교수가 수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것은 대학원 석사 과정부터이다. 그전까지는 어릴 때부터 번뜩이는 천재성을 보이는 통상적인 수학 천재들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초·중·고교 시절에는 한때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될 뻔했다는 것이 허 교수의 고백이다. 학부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고, 한때 시인을 꿈꾸기도 했다. 그런 그가 늦깎이로 연구를 시작해 10여 년 만에 필즈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수학계는 '18세에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은 선수가 20세에 윔블던에서 우승한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잠재력이 뒤늦게 폭발한 전형적 케이스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었고, 부단한 노력으로 그 기회를 잡은 셈이다. 허 교수의 성취는 인재 발굴을 위한 정책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지금은 눈에 띄지 않지만, 주변에 '제2, 제3의 허준이'가 있을지도 모른 일이다. 꼭 허 교수만큼은 아니더라도 큰 잠재력이 있는데 형편이 녹록지 않아 이를 확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사그라지는 젊은이가 여전히 많은 것 아닌가. 교육은 현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보장해야 하는 '세대 간 계약'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만큼 고교 의무교육 차원의 논의를 넘어 숨은 국가 인재를 찾기 위한 제도와 정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그동안 눈부시게 성장했고 그 토대 중 하나인 응용과학 분야에서도 큰 발전을 이뤘지만, 기초과학만큼은 여전히 여타 선진국에 뒤처져 있다. 옆 나라인 일본만 해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25명이나 배출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0명이다. 그동안 과학기술에 투자를 통해 성과를 거뒀다고 하나 혹시 바로 그 성과에 대한 집착이 기초 과학의 취약성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허 교수는 수상 후 인터뷰에서 "마음 편히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재정을 지원하는 측이 단기 성과를 재촉하면 연구자가 마음 편히 학문에 정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초 과학은 직접 돈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그 파급 효과는 무궁무진하다. 또 기초가 부실하면 화려한 성공도 사상누각이 될 공산이 크다. 허 교수가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 이후 엄청난 학문적 성과를 거뒀다는 점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개인의 잠재력이 뒤늦게 발현된 측면도 있겠지만 기초과학을 대하는 정부, 대학 등의 태도가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이 기초 과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을 새롭게 하고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 투자를 과감히 늘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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